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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신부] 24.05.29 윤지충 비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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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4-05-29 08:57 조회2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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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29.수요일 윤지충 바오로(1759-1791)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2마카 6,18.21.24-31 요한 12,24-26

 

 

순교 영성, 파스카 영성

- 섬김과 따름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시편34,2)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9)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입니다. 모두 124위 순교자들은 10년전 2014년 8월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열린 시복식 미사를 통해 복자의 반열에 든 분들입니다. 1791년 신해박해시 순교한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에 이어 1866년 병인박해까지 사이에 순교한 분들입니다. 당시 저는 안식년중으로 장충동 수도원에 머물때 였고 시복식 미사에 참석하여 감격을 체험했습니다.

 

예전 박해시 광화문 광장 일대는 처형을 앞둔 신자들이 서소문밖 네거리, 당고개, 새남터, 절두산 등지로 끌려갈 때 걸었던 길이었습니다. 124명 순교복자들은 지역별로는 한양 37명, 경기 13명, 강원 3명, 충청 18명, 전라 24명, 경상 29명등 전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음을 봅니다. 참으로 대부분 용감하게 믿음을 고백하며 순교했던 분들입니다. 당시 전라 감사가 조정에 올린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유혈이 낭자하면서도 신음 소리 한마디 없었습니다. 그들은 천주의 가르침이 지엄하다고 하면서, 임금이나 부모의 명은 어길지언정 천주를 배반할 수는 없다고 하였으며, 칼날 아래 죽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어지는 당신 상황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형 판결문이 전주에 도착하자, 감사는 윤바오로와 권야고보를 옥에서 끌어내 전주 남문 밖으로 끌고 갔다. 이때 윤바오로는 마치 잔치에 나가는 사람처럼 즐거운 표정이었으며,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교리를 설명하였다. 그들은 “예수, 마리아!”를 부르면서 칼날을 받았으니, 그때가 1791년 12월8일 이었다. 먼저 칼날을 받은 윤바오로가 32세였고, 권야고보는 40세였다.’ 

 

이런 순교자들의 순교행적을 보면 그 신앙에 깊은 충격과 더불어 우리의 나약하고 부족한 신앙을 뒤돌아 보게 됩니다. 말그대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그대로 따랐던 분들입니다. 당신의 순교를 예감하신 주님의 복음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입니다. 예수님과 그 뒤를 이은 무수한 순교자들이 땅에 떨어져 죽은 밀알들이 되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실상 이들 순교자들은 영원한 삶을 누리는 분들임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자기 목숨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절대적 가치인 진리의 주님 앞에 상대적 가치를 지닌 목숨이자 생명이었던 것입니다. 이래서 진리에 대한 한없는 사랑에서 자기 목숨에 대한 초연한 자유에 자발적 순교가 가능했으니 바로 이것이 순교영성의 진수입니다. 

 

바로 우리는 이런 순교의 모범을 제1독서 마카베오기 하권에서 뛰어난 율법학자인 엘아자르의 순교에서 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감동으로 전달되는 그의 당당하고 의연한 고백입니다. 엘아자르는 아끼는 마음에 지인들은 살길을 제시하지만 그는 일체의 호의를 겸손히 거부하며 말합니다.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아흔 살이나 된 엘아자르가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한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려고 내가 취한 가장된 행동을 보고 그들은 나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 이 늙은이에게는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고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나 자신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고 갑니다.”

 

이런 언행일치의 신앙도 보고 배웁니다. 이런 고결한 삶, 거룩한 죽음보다 젊은이들에게 좋은 가르침의 선물은 없습니다. 참으로 보고 배울 어른들이 없어 희망을, 길을, 빛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널린 세상입니다. 이렇게 그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으니 영원히 살게 된 엘아자르는 말그대로 순교자의 모범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섬기고 따르는 순교 영성을, 순교적 삶을 살아가야 할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도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을 섬기고 따르는 십자가의 길로 입증되고 검증되는 우리의 신앙이요 순교 영성입니다. 주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고 자발적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순교영성입니다. 현재의 시련이나 고난에 좌절하지 않고 존엄한 품위를 살아내는 자들이 거룩한 살아있는 순교자들입니다. 

 

참으로 순교 영성이, 파스카 영성이 절박한 때입니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 역시 빛나는 순교영성, 파스카의 영성입니다. 어제 딸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초라하고 서글프다고 고백하는 분에게 드린 말씀이 생각납니다.

 

“자신에 좌절하지 말고 주님께 희망을 두고 밝고 기쁘게 사십시오. 이것이 순교영성입니다. 어머니인 자매님이 이렇게 살아야 따님도 힘을 얻을 것입니다. 힘든 중에도 이렇게 인간다운 품위를 견지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모습이 힘든 중에도 성실히 살아가는 따님에게도 참 좋은 ‘희망의 표징’이자 선물이 될 것입니다.”

 

비상한 순교 영성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빛, 희망의 빛, 사랑의 빛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진정 순교 영성의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런 신망애(信望愛)의 순교 영성을 살도록 도와 줍니다. 끝으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제 좌우명 기도를 나눕니다. 늘 나눠도 늘 새롭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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