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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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5-12-22 09:09 조회4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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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2. 12월22일
1사무 1,24-28 루카 1,46-56
빈자(貧者)의 영성
<노래의 힘>
성서의 ‘가난한 이들’(anawim)의 노래들
“오 만민의 임금이시여, 모든 이가 갈망하는 이여,
두벽을 맞붙이는 모퉁이돌이시니,
오시어 흙으로 만드신 인간을 구원하소서.”
대림 제2부 6일째 12월22일 <O후렴>의 간절한 기도가 흡사 성서의 가난한 이들인 ‘아나빔(anawim)’의 기도같습니다. 어찌보면 하느님 앞에 우리는 예외없이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생노병사의 인생사고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본질인 가난입니다. 하느님 앞에 가난한 사람들, 이것이 인간의 정의이며 이를 깨달아 아는 것이 참된 겸손입니다. 옛 현자들의 가르침도 좋은 깨우침을 줍니다.
“인간은 바닥으로 내려갔을 때. 그 사람의 바탕이 드러난다.”<다산>
“날이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잎이 더디 시듦을 알게 된다.”<논어>
가난의 밑바닥에서 진짜 그의 영성이 드러납니다. 바로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 아나빔의 영성이 그러합니다. 이들은 가난의 밑바닥에서 절망으로 무너지지 않았고 구원의 하느님을 향해 희망의 노래를 기쁘게 부르며 인간 품위를 유지했습니다. 흡사 불암산 바위산에 무수히 억척스레 뿌리 내린 <작은 푸른솔들>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르른 희망을 노래하며 부정적 비관적이 아닌 긍정적 낙관적 인생을 살았습니다.
정부부처의 업무보고시 대통령에게 극찬을 받은 산업통상부 장관의 <30% 가짜일 줄이기> 프로젝트에 감탄했지만 빈틈이 없는 완벽한 실용주의적 관점에 우려감도 들었습니다. 일이든 사람이든 매사 완벽할 수 만은 없고 쓸모없어 보이지만 쓸모있는 30%도 함께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를 살리는 적당한 <복된 빈틈>입니다. 물이 너무 맑아 투명하면 고기가 살 수 없습니다. 아주 예전 써놨던 <가을 바위>란 시가 생각납니다.
“듬직한 바위
굽이굽이 타고 오르던 담쟁이들
붉게 물드니 꼭 머리에 화관을 쓴 듯 귀엽네
바위에도 낭만이 있네
멋쟁이 바위네
담쟁이들 은혜 갚네
허허 웃는 바위
붉게 물들어 가는 얼굴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있음의
편안함이여!
아름다움이여!”<2000.10. >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의 쓸모있음의 편안함을,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바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보호자되어 주시는 사회의 보석같은 존재들이요 이들이 있어 유지되는 사회입니다. 인공지능(AI) 만능의 윤리 부재의 시대! 실용적 관점의 잣대시 반드시 드려다 봐야 할 <영성의 결핍>이요, 역설적 진리인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의 내적현실입니다.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이들이 바로 가난한 어머니들입니다. 성서만 아니라 예로부터 우리뿐 아니라 가난한 민초들은, 어머니들은 어디에나 있었고 이들이 가난을 버텨내고 견뎌낼 수 있게 했던 것이 노래였습니다. 노래의 힘이 이 가난한 어머니들을, 민초들을 살려냈습니다. 시의 힘, 노래의 힘은 이미 우리의 <아침이슬>이나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이미 입증되었습니다.
우리의 숱한 민요들도 이에 대한 빛나는 증거입니다. 중국의 시경 역시, 성서의 시편집처럼 가난한 이들의 노래모음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가난과 절망의 질곡에서 구원해 낸 것이 바로 이런 노래였고 우리 가톨릭 교회내 가난한 이들의 노래집이 바로 시편집입니다.
그러나 이들과는 확연히, 선명히 대비되는 우리 성서의 가난한 이들, 아나빔의 노래입니다. 비관과 절망중에 한풀이 노래와는 달리 하느님을 향해 희망과 기쁨의 구원을, 불의한 압제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 가난한 이들의 승리를 노래했으니 바로 찬송가(canticle)입니다. 어찌보면 불순하고 불온한 혁명을 부추기는 노래로 들릴 듯 하지만 철저히 하느님 중심의 영적혁명의 찬송가였습니다.
바로 그 좋은 증거가 오늘 제1독서 한나의 노래요, 복음의 마리아의 노래입니다. 가난한 민초들의 염원을 두 가난한 어머니들의 입에 담아 자기들의 노래로 삼아 부른 가난한 민초들입니다. 오늘 화답송 성구들은 제1독서에서 한나가 실로의 주님의 집에 사는 엘리에게 기도로 얻은 아들 사무엘을 봉헌하며 하느님께 바치는 감사찬미가입니다.
그대로 마리아가 예수 아들을 잉태한 후 바치는 오늘 복음의 찬미가의 예표가 됩니다. 마친 한나와 마리아는 주님 찬미의 여전사, 믿음의 여전사같습니다. 이들의 영적무기는 바로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감사가입니다. 이들의 노래는 가난한 공동체들의 노래이자 개인의 노래이기도 했습니다.
“힘센 용사들의 활은 부러지고, 비틀거리던 이들은 힘차게 일어선다. 배부른 자들은 양식을 얻으려 품을 팔고, 배고픈 이들은 더는 굶주리지 않는다.”
한나의 노래는 다음 마리아의 입을 통해 반복됩니다.
“그분께서는 통치자들을 왕자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하느님의 개입을 통해 반전되는 혁명을 노래한, 희망이라곤 하느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을 향한 소원과 갈망과 희망과 기대를 담아 노래한 감사와 찬미의 영적혁명가입니다. 바로 이런 성서의 가난한 이들, 아나빔의 후예가 가톨릭교회의 수도자들은 물론 신자들이요, 이런 빈자의 영성을 살고자 마리아 성모님과 함께 매일 저녁성무일도시 부르는 오늘 복음의 마리아의 찬송가입니다.
바로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참된 정신이자 영성은 바로 아나빔의 <가난과 겸손, 찬미와 감사>임을 깨닫습니다. 정말 가난한 아나빔의 생명과 사랑의 잔치가 이 고마운 미사전례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아나빔인 가난한 우리들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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