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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신부] 26.09.04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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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9-04 09:08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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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4.연중 제22주간 금요일                                                                           1코린4,1-5 루카5,33-39

 

축제 인생

하느님 중심의 참 자유인의 삶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네 즐거움일랑 주님께 두라.

 네 마음이 구하는 바를 당신이 주시리라.”(시편37,4)

 

오늘도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팔십억 명의 손가락질은 피할 수 있어도, 내면에 있는 부끄러움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다산>

“열 눈이 보고 열 손이 가리키니 무섭구나.”<대학>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 누구도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일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해인생중에도 참으로 자유로운 축제인생을 삽니다. 모든 불행은 삶에서 하느님 중심을 잃어버릴 때 무질서의 혼돈에서 생깁니다. 오래전 다음 두 편의 자작시도 하느님 중심의 축제인생을 살라는 깨우침을 줍니다. 

 

“입추 처서 지나

 가을 문턱 들어서니

 침묵 배경 달빛, 별빛 조명 아래

 밤마다 열리는 주님 찬미의 가을 풀밭 천상음악회

 풀벌레 모습들은 보이지 않고

 온갖 청랑한 소리들 가득한 천상음악회”<천상음악회;2010.9. >

 

“들꽃들이 저마다 

 저리도 맑고 청초한 것은

 하늘 사랑만으로 행복하기 때문일 거다

 무아의 행복

 무아의 아름다움이다”<저리도 맑고 청초한 것은;2010.5. >

 

무아無我는 하느님 중심의 진아眞我를 의미합니다. 모두가 하느님 중심의 자유롭고 행복한 축제인생을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참으로 고해인생 중에도 축제인생을 살았던 하느님 중심의 대 자유인의 모범이 바로 복음의 예수님이요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시종이자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서 바오로의 고백이 그가 얼마나 자유로운 삶인지 입증합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다음 고백에서 그의 하느님 중심의 철저한 삶이 잘 드러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 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대자유인의 비밀이 잘 드러납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철저할 때 자신도 심판하지 않거니와 남도 심판하지 않는 참 자유인의 삶입니다. 심판하실 분은 단 한 분, 하느님뿐이십니다. 오늘 복음의 대자유인 예수님을 그대로 닮은 바오로 사도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단식의 잣대로 예수님 제자들을 심판합니다. 요한의 제자들도,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자주 단식하며 기도하는데 왜 당신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 만 하느냐 심판하며 예수님을 집요히 추궁합니다. 예수님의 답변이 참 통쾌합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을 할 것이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천상지혜의 분별력입니다. 단식이 잣대가 아니라 신랑이신 주님이 잣대입니다. 단식의 때에 단식하고 혼인잔치로 상징되는 축제인생을 고해인생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단식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단식의 거부가 아니라 단식의 때 과시나 허영이 일체 배제된 참된 단식을 하고, 나머지는 주님과 함께 축제인생을 즐기라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닮은 주님의 제자들이나 성인들은 모두가 고해인생 중에도 하느님 중심의 대자유인의 축제인생을 살았습니다. 

 

이어지는 <새것과 헌것의 비유>가 참 적절합니다. 부단히 <헌 부대에서 새 부대>에로의 사고의 전환, 의식의 전환, 발상의 전환,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합니다.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거나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는 어리석음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이야말로 진짜 분별력의 지혜요, 세월 흘러 나이 들어도 이렇게 유연하고 신축성이 좋고 개방적이어야 참으로 자유롭습니다. 오늘 복음의 결론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러나 한 번 고착된, 보수화된 사고는, 이념은, 확신은 결코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굳어 버린 사고는 바뀌기가 거의 불가능하니 이보다 큰 병은 없습니다. 바로 다음 말씀이 이런 이들의 내면의 실상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이래서 구제불능의 꼰대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나이 들어가는 이들에게는 참 힘든 과제입니다. 이래서 공동체에 선물이 아닌 짐이 되어가는 노년의 세대입니다. 나이 들어갈수록 <새 포도주는 새 부대>, <새 사고에 새 마음 부대>를 위해 분투의 노력이. 겸손한 배움의 자세가 절실합니다. 날마다 <새 마음 부대에 새 말씀이신 주님>을 모시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늘 새롭고 자유로운 <축제인생>을 살게 합니다.

 

“네 앞길 주께 맡기고 그를 믿어라,

 몸소 당신이 해 주시리라.”(시편37,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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