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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신부] 26.09.03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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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9-03 08:58 조회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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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3.목요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540-604) 축일  


2코린4,1-2.5-7 루카22,24-30

 


주님은 ‘구원의 출구’요 ‘삶의 방향’

“만남, 버림, 따름”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시편24,3-4ㄱ)

 

주님을 따르는 하느님 중심의 삶이 세상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진짜 지헤롭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입니다. 오늘도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저에게는 주변의 모두가 하느님을 반영하는 스승입니다. 보고 듣고 평생 끊임없이 겸손히 배우고 공부해야할 스승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가르침도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 이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가장 문제가 되는 사람이다.”<다산>

정말 자기를 아는 겸손한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자기를 모르는 무지보다 큰 <마음의 병>도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는 자는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자는 그 다음이다. 곤경에서 배우는 사람은 또 그 다음이고, 곤경에서 배우지 않는 자는 최하등이다.”<논어>

 

삶의 모두를 배움의 계기로 삼을 때 내적성장에 성숙의 삶입니다. 저에게는 함께 사는 수도형제도 때로 위로와 힘이 되는 좋은 스승이요 지금도 배우는 마음은 끝이 없습니다. 예전 꼭 20년 전 당시 50대 중반의 수도형제를 보며 쓴 <마음은 천생 아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몸은 오십대 중반이지만 마음은 천생 아이다

 일명 방개차라 부르는 

 자그마하고 아담한 중고차 다마스,

 편하게 많은 짐을 실을 수 있어 실속은 그만이란다

 탈 때마다 언제나 싱글벙글

 꼭 맘에 드는 장난감 들고 좋아하는 아이 같다”<2006.9. >

 

70대 중반인 지금에도 천진한 모습은 여전한 수도형제입니다. 이 또한 한결같이 주님을 따라 살아 온 결과입니다. 사람이 물음이라면 주님은 답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결코 무지와 허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도저히 자기를 알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정말 주님을 알수록 자기를 알게 되어 겸손하게 되고 지혜로워집니다. 이래서 주님과의 만남과 회개를 강조합니다. 

 

공부중의 평생공부가 매일미사를 통해 주님을 알고 나를 아는 공부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고기잡이 기적을 통해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과정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시몬의 배에 오르시는 주님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주님과 시몬의 주고받은 문답입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어디가 <삶의 깊은 데>입니까? 주님이 함께 계신 곳, 그 어디나 <삶의 의미>를 잡아 올릴 수 있는 깊은 데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주님 부재의 허무의 삶이었음에 대한 참 가난한 고백입니다. 평생 열심히 성실히 일했는데 허무와 무의미 가득한 삶이었다면 그 인생 얼마나 허망하겠는지요! 주님이 함께 하시니 고기잡이의 기적이요 충만한 삶의 상징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신선한 충격의 감동입니다. 스승에서 주님으로 호칭이 바뀝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주님과의 만남과 동시에 회개요 자기를 발견하여 참된 겸손에 이른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주님의 거울>에 환히 드러난 죄인으로서의 자기의 모습을 발견한 베드로입니다. 오매불망 꿈에 그리던 주님을 만난 베드로입니다. 구원의 출구이자 삶의 방향인 주님을 찾았던 내적 갈망의 사람, 베드로였음이 분명합니다. 구원의 출구이자 삶의 방향인 주님을 모른 채 평생 <무지와 허무>속에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이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주님을 만나자 두려움은 사라지고 새로운 사명이 주어집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야고보와 요한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침내 구원의 출구, 삶의 방향을 발견했고 새로운 삶의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베드로와 어부들이, 또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했더라면 그 인생들 어떻게 되었겠는지요? 우연은 없고 하느님 섭리의 손길 안에 있는 우리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만난 다음 바오로의 고백에 베드로 역시 크게 공감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지혜롭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인간을 두고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바오로도 아폴로도 케파도,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세상의 눈에는 여기 수도생활도 참 어리석어 보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시야에 도달한, 세상의 눈으로 어리석은 바오로가 실제 하느님 눈에는 지혜로운 자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하느님을 알면 알수록 겸손해지고, 세상눈에는 어리석어 보여도 하느님 눈에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참으로 이런 이들이 성인입니다. 

 

오늘은 제 64대 교황인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입니다. 성 예로니모, 성 암브로시오, 성 아구구스티노와 함께 서방 4대 교부에 속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어리석어 보이는 무욕의 삶이지만 하느님의 일에 헤아릴 수 없는 기적을 이룬 정말 하느님의 눈에는 지혜로운 성인 교황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는 칭호를 최초로 사용한 성인입니다. 교황권을 <지배하는 특권>이 아닌 <봉사하는 특전>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미사시작 시 자비송과 영성체전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것도 성인의 업적입니다. 자선, 선교, 전례, 영성에서뿐 아니라 야만인들의 침략으로부터 교회는 물론 로마를 구한 외교력에도 탁월한 수완을 발휘한 성인입니다. 그 바쁘고 병약한 와중에도 어떻게 주옥같은 그 많은 저술을 했는지 이해불가입니다. 성인의 모친은 성녀 실비아입니다. 성인이 604년 세상을 떠나기 전 4-5년 동안은 얼마나 큰 병고를 겪으셨는지 다음 일기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열한달 동안 나는 거의 침대를 떠날 수 없게 되었다. 통풍과 고통스런 근심들로 너무 괴로운 나머지 매일 죽음의 안식을 기다린다. 근 2년 동안 나는 침상 위에 매여 있었다. 통증이 너무 괴로워서 축일에 조차 세 시간 동안 일어나 미사를 봉헌하기가 버겁다. 나는 매일 죽음의 문턱에 서고, 매일 그 앞에서 내쳐진다. 나는 애타게 죽음을 기다린다.”

 

599-601년 사이에 쓴 일기이고 604년 선종이니 얼마나 큰 병고 중에 지내셨는지 짐작이 됩니다. 수도생활을 하셨고 <베네딕도 전기>를 쓸 정도로 수도생활을 사랑하셨으면서도 교회 안팎으로 하신 그 많은 일들을 보면 정말 다방면에 걸친 천재 성인 교황임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어리석은 무욕의 삶이었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지혜로운, 주님을 충실히 따른 제자였던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대우大愚의 대지大智>의 역설적 겸손한 성덕聖德의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오늘 입당송이 성인의 삶을 요약합니다.

 

“복된 그레고리오는 베드로 좌에 올라,

 언제나 주님의 얼굴을 찾고, 주님 사랑의 신비를 기리며 살았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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