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8.21 성 비오10세 교황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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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8-21 09:04 조회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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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21.금요일 성 비오 10세 교황(1835-1914) 기념일
에제 37,1-14 마태 22,34-40
경천애인(敬天愛人)
“사랑은 영이요 빛이요 생명이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들을.
주님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시편107,8-9)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옛 현자의 말씀이 우리 삶에 좋은 지침이 됩니다.
“선비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장 늦게 밥상을 받을 줄 알아야한다.”<다산>
“매일 내리는 사소한 선택들이 모두 나를 만드는 나의 역사가 된다.”<다산>
“삶도 내가 바라는 것이고, 의도 내가 바라는 것이지만, 이 둘을 함께 취할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택한다.”<맹자>
의(義) 대신 사랑을, 진리를, 주님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이들이야 말로 판단의 잣대가 됩니다.
요즘 옛 일기장을 펴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옛 초등학교 교편시절, 무려 50년전, 1976년 7월15일자 일기와 시를 발견했습니다.
-“매일 바쁜 하루다. 아이들은 시험보기에 나는 채점에 여념이 없다. 아이들보기가 딱하고 미안하다. 아이들이 조그만 정성으로 나에게 과일을 마련해 주니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다. 오랜만에 유쾌하게 웃었다. 더 한층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보람을 느낀다. 아이들 한 마디 한 마디 말이 꽃답고 향기롭다. 또 누가 내 잠바 칼라에 꽃을 붙였다. 누굴까? 귀여운 행동에 내 마음 조차 즐겁다. 어린 아이같이 유쾌하기만 하다.”
바로 이날 아이들의 사랑에 고무되어 쓴 <하늘을, 산을 보라>는 시도 있습니다. 지금은 <불암산> 기슭 수도원에 살지만 당시는 <관악산> 기슭 초등학교에서 청년교사로 지냈습니다.
“하늘을 보아라
푸른 하늘에 우리 마음을 띄우고 우리 웃으며 노래하자
밝게 떠오르는 태양은 항상 우리 마음을 빛나게 해주는구나
슬퍼하거나 외로워할 것 없다
우리 마음에 태양을 안고 살아가기에
산을 보아라
저 푸르게 힘차게 자라나는 나무들 싸우거나 다투지 않는다
사이좋게 정답게 힘차게 자란다
너와 나의 마음에서 서로 사랑의 향기를 맡으며
하늘같이 넓고 태양같이 밝고 나무같이 씩씩하고 꽃같이 아름답게 자라자”
<1976.7.15.>-
여기까지가 하루의 일기입니다. 지금 매일 강론을 쓰듯 당시는 매일 일기를 썼습니다. 주님께 연서를 쓰듯, 살아 있는 그날까지 연서를 쓰듯 매일 강론 쓰기가 유일한 소원입니다. 지금 하느님이 제 사랑 전부이지만 당시는 아이들이 제 사랑 전부였습니다. 당시는 28세 불타는 열정의 청년교사의 글이었지만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합니다. 불암산 기슭 수도원에 38년 동안 정주하면서 날마다 하루에도 수없이 <하늘과 산>을 바라보며 경천애인의 사랑을 키웠고 키우고 있고 키울 것입니다. 제 삶의 8할은 <하늘과 산>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톨릭교회를 명실공히 명품종교로 만드는 분들이 바로 성인들입니다. 교회의 참 보물들이요 교회의 하늘에 무수히 별처럼 빛나는 성인들입니다.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되면서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 <삶의 좌표>가 되는 경천애인의 모범인 성인들입니다. 성인이 되는 것은 우리의 성소입니다. 기억하고 기념할 뿐 아니라 각자 고유의 주님을 닮은 참나의 성인이 되라고 우리를 격려하는 성인들입니다. 오늘은 어제의 성 베르나르도 기념일에 이어 제257대 교황 성 비오 10세 기념일입니다.
성 비오 10세 교황은 유언장에서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가난하게 죽고 싶다” 고백할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10남매중 둘째였으며 아버지 조반니는 마을 우체부였고 어머니 마르가리타는 재봉사였습니다. 단순하고 한결같이 선한 마음과 가난의 정신을 소유한 교황은, 생전에도 신자들에게 성인으로 존경받았습니다. 특히 매일 영성체를 할 것을 강조했고 첫영성체 나이를7세로 앞당기는 등 “성체의 교황”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성 비오 10세 교황은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에페1,10)를 사목표어로 정하고 정치적인 교황보다 종교적인 교황이 되겠다는 사목지침을 명확히 했습니다. 그는 교황청 구조를 개편하고 전례를 개혁하며 교회법을 편찬하는 등 현대교회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은 교황의 병세를 악화시켰고 세계 대전이 발발한지 22일만인 1914년 8월20일 선종합니다. 교황은 바티칸의 화려함과 의식 대부분을 매우 불쾌하게 여겼고, 그의 뜻대로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 묘실의 소박한 무덤에 안장됩니다. 참으로 가난하고 겸손했던, 경천애인의 성 비오 10세 교황이었습니다. 경천애인은 고 김대중 토마스 모아 전 대통령의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사랑밖엔 길이, 답이 없습니다. 사랑이야 말로 성덕의 잣대이자 율법의 완성입니다. 평생 배워도 끝이 없는 평생 사랑공부에는 누구나 <영원한 초보자>일 뿐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도 사랑의 이중계명이 우리 사랑의 모두임을 명쾌하게 천명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구별될지언정 분리된 것이 아니니 하느님 사랑의 진위는 이웃사랑으로 표현되고 검증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기적이고 불순한 사랑은 부단히 하느님의 생명을 주는 사랑, 자유롭게 하는 아가페 사랑으로 정화되고 성화되어야 함을 배우니, 이 또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성령이요 생명임이 오늘 예언자 에제키엘을 통해 환히 계시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성령이요 생명임이 오늘 예언자 에제키엘을 통해 환히 계시됩니다. 바빌론 유배중인 기원전 586년쯤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대로 무기력하여 마른 뼈들같이 생각되는 오늘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숨에게 말하여라. 사방에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 집안이다. 그들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의 희망은 사라졌고 우리는 끝났다.’고 말한다.”
생명의 하느님 사랑이, 희망이 빠지면 누구나의 가능성이 마른뼈들 인생입니다. 그대로 절망에 빠진 신자들은 물론 현대인들에게 주시는 말씀같습니다. 계속되는 주님의 사랑의 말씀이 우리에게 용기백배 힘을 줍니다.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무덤을 열겠다. 이렇게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삶의 자리에다 데려다 놓겠다.”
그대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우리를 살리시고 자유롭게 하시는 주님의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하느님 사랑 체험 덕분에 살아가니 우리의 이웃사랑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의무임을 다시 배웁니다.
“마음을 돌려 진정하는 것이 구원받는 길이다.
고요히 믿고 의지하는 것이 힘을 얻는 길이다."(이사30,15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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