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8.18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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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8-19 09:16 조회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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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19.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에제34,1-11 마태20,1-16
우리가 평생 배워 닮아야 할
“주님의 자비와 지혜의 어진 목자 영성”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파란 풀밭에 이 몸 누여 주시고,
고이 쉬라 샘터로 나를 끌어 주시니,
내 영혼 싱싱하게 생기 돋아라.”(시편23,1-3ㄱ)
어제 <서예가 김단희의 서화집>에서 읽은 두 말마디가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근능보졸검가양렴(勤能補拙檢可養廉)”; 부지런함은 서툼을 보존할 수 있고, 검소함은 청렴함을 기를 수 있다.
“인자필수(仁者必壽)”; 어진 사람은 반드시 장수한다.
오늘 복음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하늘나라의 비유입니다. 흡사 자비하시고 지혜로우신 아버지의 비유처럼 들립니다. 서두 말마디부터 기분이 좋습니다. 오매불망 주님의 꿈은 하늘나라의 실현임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 삶의 궁극의 목표도 하늘나라 꿈의 실현입니다.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제가 오늘 복음을 보건데 선한 포도밭 주인은 그대로 자비하시고 지혜로우신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좋은 사업가’라기보다는 ‘어진 목자’처럼 생각됩니다.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을 구하기 보다는 실업자들을 찾아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주 목표처럼 보입니다. 자비하신 주님은 분명 재미있는 분이실 것이라는 생각에 문득 떠오른 오래 전 두 편의 자작시입니다.
“주님은 참 재미있으신 분
때로 심심하면 피조물들과 숨바꼭질하신다
당신 물안개 아늑한 신비로운 품안에 산과 나무들
이리저리 숨겨놓고 숨바꼭질하신다
주님은 다 아셔도 짐짓 못 본체 찾으시다가
물안개 다 걷힌 다음에야 ‘아, 너희들 여기 있었구나’
말씀하실 것 같다”<주님은 재미있으신 분; 2007.7. >
“점잖은 성 요셉상 주변
벌거벗은 나체 바위들 보기가 민망스럽다
‘어른 앞에서 그렇게 벗고 있는 게 아니다’ 침묵 중에 말씀하시며
소리 없이 벌거숭이 바위 온몸에 초록빛 생명으로 빛나는
담쟁이덩굴 옷을 입혀주신
참 자비하고 지혜로우신, 참 멋진 주님이시다”<참 멋진 주님; 2010.6. >
유쾌하고 즐거운 덕담, 청담의 유머는 참 영성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유머스러울 뿐 아니라 참 자비로우시고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자비와 지혜는 둘이 아니라 한 실재의 양면이요, 이 둘은 함께 갑니다.
살림의 하느님입니다. 자비와 지혜는 주님 안에서 하나로 모아져 만물을 살립니다. 오늘 선한 포도밭 주인은 실업자들 걱정에 오전부터 오후까지 장터에 나가 일꾼들을 구해 살립니다. 이른 아침부터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오전 9시부터 시작하여 무려 하루 일이 끝날 무렵 오후 5시까지 장터에 나가 실업자들을 구제하십니다.
그대로 자비하시고 지혜로우신 어진 목자의 면모이지 유능한 사업가의 면모가 아닙니다. 비유의 절정은 후반부에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모두에게 똑같이 한데나리온을 지급했다는 것이니 짧은 인간의 안목으로는 공정과 정의에 어긋나는 듯 보입니다. 맨 먼저 오전에 온 이들의 항의가 지극히 타당해 보입니다.
뙤약볕 속에서 온종일 일한 자들과 오후 5시쯤 온자들과 똑같이 지급하다니! 지극히 부당하고 불합리해 보입니다. 주인의 대답이 참 통쾌합니다. 항의하던 일꾼과 우리의 무지를 일깨우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부끄럽게도 주인으로 상징되는 주님의 모두를 살리는 자비와 지혜를 까맣게 잊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서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좋은 사업가보다는 착한목자 주님의 모습이 역력합니다. 일한 시간이 아니라 일꾼들의 내적 사정을 꿰뚫어 통찰했던 주님은 요즘 널리 회자되고 있는 기본소득제의 원조임을 깨닫습니다. 사람 누구나 존엄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 기본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한 복지제도의 기본소득제요 이미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는 작금의 긍정적 낙관적 현실입니다.
새삼 사제의 우선적 신원도 좋은 사업가가 아닌 어진 목자임을 배웁니다. 옛 어른의 “원장은 장상이기보다는 어진 목자”라는 사실을 강조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배워 닮아야 할 영성은 바로 오늘 포도밭주인과 같은 자비롭고 지혜로운 어진 목자 영성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에제키엘은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 개탄하는 바, 완전히 타락하여 탈선한 이스라엘 목자들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에제키엘을 통해 쏟아지는 당신을 닮아 <어진 목자들이 되라>는 주님의 열화와 같은 말씀입니다.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는 내 양들을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나 이제 내 양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복음의 일꾼들 모두가 한 데나리온을 받았듯이, 우리도 똑같이 오늘 <주님의 성체>와 <좋은 하루>를 선물로 받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오늘 하루 <자비와 지혜의 어진 목자 영성>을 살게 합니다.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시편23,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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