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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신부] 26.08.14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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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8-14 08:52 조회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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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14.금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1894-1941) 기념일


에제16,1-15.60.63 마태19,3-12

 

어떻게 살 것인가?

<주님과 우정의 여정>

“아버지의 자녀답게. 주님의 제자답게”

 

“보라, 하느님은 나의 구원, 

 신뢰하기에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다.” (이사12,2)

 

주님이자 스승인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믿는 이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이런 주님과 우정의 여정을 살아갑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날마다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아버지의 자녀다운 삶, 주님의 제자다운 삶이 답입니다. 옛 현자의 말씀입니다.

 

“배움이란 눈으로 읽어 머리에 채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전해 받아 삶에 새기는 것이다.”<다산>

여기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삶의 나이테, 영혼의 나이테”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에 제자는 공손한 태도와 겸허한 마음으로 극진히 배워야 한다.  선한 것을 따르고 의로운 일을 들으면 실행해야 한다.”<관자>

무엇보다 주님의 제자라면 평생 배움의 여정 중에 배워야할 바 <섬김의 사랑>입니다.

 

어제 3개월 만에 젊은 원장수사와 면담시간을 가졌습니다. 저의 바램을 피력함으로 짦은 시간에 끝났습니다. 

“앞으로 10-15년 정도의 삶이 남은 것 같습니다. 남은 동안 마지막 까지 미사와 강론에 충실하며, 그리고 공동체에 짐이 되지 않고 공동체의 선물로,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학인, 주님의 전사로 살기만 바랄뿐입니다.”

무엇보다 대두되는 것이 주님과 우정의 여정입니다. 일일일생, 일생을 하루로 압축했을 때 어느 시점에 위치해 있겠는지 묵상 중 써놓은 <내 나이 지금 몇시인가?>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내 나이 몇 시이지?

 내 나이 58세, 1949년생, 아마 오후 3시, 혹은 3시 반?

 점점 어둠도 고요도 깊어지겠지

 해맑은 아이라면 아침이슬 머금은 아침 6시

 십대 사춘기 청춘이라면 오전 10시

 한창 청년의 나이라면 낮 12시

 

 이러니 하루가 평생의 압축이 아닌가?

 하루를 평생처럼 평생을 하루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맑고 밝기만 하고 깊이가 없는 오전의 나이들이라면 점심 지나면서는

 고요히 스며드는 어둠과 더불어 

 깊어가는 오후의 나이들이어야 맞는 거다

 

 그리고 밤 나이에는 풍요로운 고독과 침묵의 그분 품 안에

 별빛 달빛 반짝이는 주님 품 안에 머물다 

 잠같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거다

 이어 동터오는 아침과 더불어 주님과 함께 찬란한 부활을 맞이하는 거다

 

 궁극엔 햇빛 찬란한 부활의 아침을 향한 희망의 여정이기에

 나이 시간에 구애됨 없이

 아침에는 아침 나이의 순수로, 점심에는 점심 나이의 열정으로 살 수 있기에

 그 시간 나이에 맞게

 늘 희망 가득한 나날을 살 수 있는 거다

 내 나이 몇 시 인가? 창밖을 볼 때 마다 생각한다“<2006.8. >

 

시 쓴지 20년이 훌쩍 흘러 2026년입니다. 새삼 삶에서 주님과 우정의 여정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기혼자든 독신자든 이혼하여 홀로 사는 자든, 믿는 자라면 우선적인 것이 삶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주님과 우정의 여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혼인과 이혼, 혼인과 독신에 대한 귀한 가르침을 줍니다. 우선 기혼자나 혼인을 하려는 자는 성서의 대 원칙이자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창세1.27)

 

오늘 에제키엘서의 주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부부생활은 물론 주님과 우정의 여정에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끝까지 이스라엘 반려자에게 충실하신 주님의 충실성을, 인내의 사랑을 배우자는 것입니다. 마지막 결론 대목이 주님의 한결같은 영원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너는 맹세를 무시하여 계약을 깨뜨렸다. 그러나 나는 네가 어린 시절에 너와 맺은 내 계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계약을 세우겠다. 그제야 너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참으로 주님다운 무한한 인내의 사랑을 마음에 새기면서, 또 부부의 중심인 주님과 우정의 여정에 충실하면서 부부 혼인 생활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입니다. 함께 사는 것보다 힘든 것은 없습니다. 답이 없습니다. 부득이한 경우 이혼하여 홀로가 되더라도 주님과 우정의 여정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코 주님을 떠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혼인생활이 어려울 바에야 홀로 사는 것이 좋겠다는 제자들 말에 주님의 답이 의미심장합니다. 모태에서부터, 사람들 손에 의해 고자가 된 경우는 제쳐 놓고 다음 세 번째가 우리의 논의의 중심입니다.

 

“하늘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강제성을 띠지 않는 종말론적 예외 상황도 있다는 것이니 바로 주님으로 인한 자발적인 독신의 성소를 뜻합니다. 이래서 가톨릭교회의 전통 안에 면면히 계승된 동정녀들이고 독신의 성소자들이며 독신의 수도자들과 사제들, 그리고 이혼하여 동정으로 사는 주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주님께 대한 자발적 사랑에서 시작된 이들의 성소이기에 주님과 평생 우정의 여정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오늘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성모기사회를 설립하여 평생 선교사로 살다가 47세 순교한 폴란드 출신의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성인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프란치셰크 가요브니체크 대신 죽음을 택한 사랑의 결단은 영원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바로 성인의 주님과의 우정의 여정에 참으로 충실했음을 반영합니다. 성인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는 그대로 깊고 깊은 주님의 사랑을 반영합니다.

 

“저는 가톨릭 사제입니다. 저는 저분을 위해 죽고 싶습니다. 저는 나이가 많고 저분에게는 아내와 자식이 있습니다.”

(I am a Catholic priest. I wish to die for that man. I am old; he has a wife and children)

 

마리아 콜베 신부는 1982년 10월10일 폴란드 출신에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위치한 크라코프의 주교였던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됩니다. 성인 덕분에 살아난 프란치셰크 가요브니체크는 성인이 구해준지 53년후 1995년 3월15일 세상을 떠났으며, “나는 숨이 붙어 있는 한 막시밀리안 콜베의 영웅적인 사랑의 행위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저의 의무로 알고 살아왔다.”고 고백합니다. 

 

참으로 기혼자든, 이혼자든, 독신자든 삶의 중심인 주님과의 우정에 여정에 충실하면서 주님의 제자답게, 하느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고 아름다운 품위의 삶을 사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합니다. 바로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과 우정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이사1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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