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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신부] 26.06.24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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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6-24 09:33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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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6.24. 수요일 성 요한 세례자 대축일 


이사 49,1-6 사도 13,22-26 루카 1,57-66.80

 


‘神의 한 手’ 같은 우리들

“우연은 없다”


 

“오묘하게 지어주신 이 몸,

 당신을 찬송하나이다.”(시편139,14ㄱ)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오늘 현자의 가르침도 좋은 도움이 됩니다. 신앙생활에도 끝까지 시종여일 한결같은 우보천리牛步千里의 자세가 절대적임을 배웁니다.

“느긋한 걸음이 가장 멀리 가니 먼 길을 앞당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치지 않는 것이다.”<다산>

“주저하는 준마駿馬보다 꾸준히 가는 둔마鈍馬가 낫다.”<사기>

문득 흔한 <미영>이라는 이름을 ‘소처럼 이롭다’는 뜻의 <우리牛利>란 독특한 이름으로 개명했다는 어느 자매의 일화도 생각납니다.

 

새벽 인터넷을 여니 유투브중 한 자막안에 글자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신앙이 아니라 돈이었다. 한국교회(개신교) 조용한 몰락. 10년간 60만명이 떠났다.” 탈종교화의 시대가 도래한듯합니다. 어느 목사와 종교학자는 깨달음의 영성을 강조하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저의 지론이 옳았음을 확인합니다. 노년의 품위 있는 삶의 우선순위는 <1.하느님 신앙, 2.건강, 3.돈>이라는 것입니다. 이 우선순위는 불변이요, 하느님 신앙이 없이는 건강과 돈이 삶의 전부인 우상이 되버리기 십중팔구입니다. 새롭게 떠오르는 제 행복기도중 한 대목의 신앙고백입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생명, 저의 사랑,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기도하는 인간, 인간의 정의입니다. 깨달음의 영성, 기도할 대상이 없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기도의 교과서 시편집은 사랑하는 주님을 향한 한결같은 찬미와 감사, 신망애의 고백의 기도입니다. 제 자전적 글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 서두의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우연은 없다. 지나고 보니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이요 섭리였음을 깨닫는다,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다. 한 권의 살아 있는 성경책이다.”

 

그렇습니다. 결코 우연적 존재는 없습니다. 깊이 깨닫고 나면 우리 하나하나가 <신의 한 수>와 같은 섭리적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이를 가시적으로 드러나 확인하는 것이 세례성사를 통한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신원입니다.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예수님말고 탄생 대축일을 지내는 분은 성 요한 세례자가 유일하니 참 대단히 중요한 성인임을 배웁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전형적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성 요한 세례자요, 세 측면에 걸쳐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섭리입니다.

섭리의 사랑이요 은총입니다. 성 요한 세례자가 주님 섭리의 사람이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섭리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세례자 요한의 출생과 작명과정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주님의 섭리를 감지합니다.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자 이웃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며 함께 기뻐합니다. 

 

작명과정에서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단호히 말하는 엘리사벳 아내에 화답하여, 잠시 벙어리로 지내던 즈카르야가 판에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쓰자,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섭리의 손길을 확인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하고 말합니다. 결론 같은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말씀이 요한 세례자가 섭리적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의 마지막 아름다운 대목이 주님의 섭리 은총이 요한 세례자와 늘 함께 했음을 입증합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 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우리 역시 지금까지 살아 온 내 삶의 성경책을 고요히 렉시오 디비나 해보면 굽이굽이 하느님 은총의 발자취를, 은총과 죄가 점철된 섭리의 발자취를 확인할 것입니다. 요한 세례자만 아니라 주님의 손길이 나를 보살피고 계셨고 계시고 계실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둘째, 신원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불림 받음으로 비로소 자존감 높은, 존재감 충만한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오늘 이사야서는 요한 세례자는 물론 우리 믿는 이들의 신원이, 정체성이, 사명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역사상 수많은 성인들이 요한 세례자처럼, 예수님처럼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신원과 사명을 확인했습니다. 요한 세례자는 물론 그대로 우리를 향한 말씀처럼 우리를 고무하고 격려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우리 하나하나가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일시 좌절한듯하나 성소를 확인하며 다시 심기일전, 용기백배하여 다시 시작하는 주님의 종이 상징하는 바 우리들입니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이어 우리의 시야를 활짝 열어주는 말씀이 우리에게는 신선한 자극이요 충격이 됩니다. 주님의 종이자 빛으로서 제자리에서 제 사명의 몫을 다하며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면서 동시에 우리의 시선과 시야는 주님을 닮아 주변에 활짝 열려 있어야함을 배웁니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셋째, 겸손입니다.

겸손의 사랑, 사랑의 겸손입니다. 주님의 종이자 주님의 자녀인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가 바로 겸손입니다. 주님을 닮는 첩경의 지름길이 겸손입니다. 믿는 이들의 삶은 날로 자기를 비움으로 겸손해 지는 겸손의 여정입니다. 일상의 모두를 겸손을 배우는 겸손의 계기로 삼는 것이 지혜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아는 것이 바로 겸손이자 지혜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도 자기를 아는 겸손뿐입니다. 요한 세례자야 말로 겸손의 대가요 달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설교중 요한 세례자의 고백을 통해 겸손을 배우는 우리들입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뿐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겸손한 이들에게 계시되는 하늘나라의 신비입니다. 주님 역시 겸손한 분이기기에 겸손한 이들에게 당신 마음을 여시며 우정의 친구로 삼으십니다. 예수님과 요한 세례자의 영적우정이 우리에게는 참 좋은 우정의 본보기가 됩니다.

 

주님 섭리의 손길을 깨달아 자기의 사명과 신원에 대해 깊어지는 이해와 함께 가는 겸손이요, 하느님의 사랑은 겸손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가는 겸손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아주 오래전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자작시로 강론을 마칩니다.

 

“커져서 텅 빈 공空이 되고

 작아져 흔적 없는 무無가 되어 살 수는 없을까

 물러나 하늘 배경이 되고

 내려와 땅 마당이 되어 살 수는 없을까

 참 아름답고 향기로운 무아無我의 삶, 진아眞我의 삶이겠다

 하느님 같은 사랑이겠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느님은 겸손이시다.”<1999.12.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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