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1.30 연중 제3주간 금요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1-30 09:14 조회223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2026.1.30.연중 제3주간 금요일
2사무11,1-4ㄱㄷ.5-10ㄱ.13-17 마르4,26-34
하느님의 나라
“우리의 영원한 꿈이자 비전”
“하느님, 자비하시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련함이 크시오니 내 죄를 없이 하소서.”(시편51,3)
하느님의 나라는 오늘 복음의 저절로 자라는 씨나 겨자씨의 비유에서처럼 오늘 지금 여기서 부터 점차 실현됩니다. 진정한 성장은 내적 성장, 하느님 나라의 성장이요, 눈만 열리면 겨자씨만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상징들로 가득한 세상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하느님의 순리에 따라 겸손히 인내하며 사랑의 노력을 다함이 참된 지혜요, 이때 서서히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의 꿈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공부의 필요성입니다. 정말 공부에는 끝이 없습니다. 살아갈수록 공부할 것은 계속 늘어납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공부하고 싶어서라도 오래 살고 싶습니다. 평생학인이 되어 늘 공부하는 사람만이 영원한 청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공부에는 끝이 없다.”<다산>
“일은 충실하게, 말은 신중하게 하며, 도를 체득한 사람을 보고 자신을 바로 잡는 다면 ‘학문을 좋아한다’라고 할 수 있다.”<논어>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하는 배우고 공부해야 할 것들입니다. 신구약 성서만이 아닌 오늘의 세상 역시 날마다 공부해야 하는 성서 책입니다. 날마다의 매일미사 전례문도 평생 영성 공부에는 제일입니다. 오늘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의 복음이 제1독서 사무엘 하권 내용에 대한 답이 됩니다. 늘 때되면 읽는 오늘 다윗의 악행이 오늘 따라 큰 충격으로 와닿습니다.
어제 참으로 멋지고 감동적인 <감사의 기도>를 바치던 다윗에 감격하여 큰 칭찬과 찬사를 보냈는데, 오늘은 급전직하 상상치 못할 일이 발생합니다. 참으로 우리에게도 큰 경각심을 주는 일화요 누구나에게 가능한 인간 내면의 악이요 어두움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궤 앞에 덩실덩실 춤추던 다윗이, 또 긴 감사의 기도를 드리던 다윗이, 하느님 사랑의 절정을 보여주던 다윗이, 유혹에 빠져 죽을 죄를 대죄를 지은 것입니다.
목욕하던 우리야의 아내 바세바의 나체에 매혹되어 데려다가 간음하고 임신하자, 그의 남편 요압의 부하 우리야를 동침시키려는 2차에 걸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요압을 시켜 우리야를 전장에 최전선의 사지에 배치해 전사하도록 지시했고 그대로 이루어져 우리야는 참으로 억울하게 죽으니, 정말 쥐도 새도 모르는 다윗의 시도가 성공한 완전범죄처럼 보입니다. 참으로 천인공노할 다윗의 간음에 이은 실질적 살인입니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사건인지요! 그래도 놀라운 것은 다윗의 악행에 대한 솔직한 고백입니다. 흡사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흡사한 다윗의 고백록처럼 생각되는 오늘 성서의 내용입니다. 이에 대한 다윗의 회개는 오늘 화답송 통회 시편 51장을 통해 절절히 표현되고 있습니다.
오늘 다윗의 범죄 과정의 유혹이 흡사 암세포가 번지듯 점차적으로 진행되어 마침내 간음에 이어 살인까지 이르게 되니 복음의 저절로 자라는 씨와 겨자씨의 비유를 연상하게 됩니다. 여기서는 좋은 씨가, 겨자씨가 아니라, 악의 씨앗이요 부패의 씨앗입니다. 악의 씨앗을 그대로 방치하면 암세포처럼 점차 번져가고 부패의 씨앗을 방치하면 점차 전체가 썩어갑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영적 균형과 조화가 깨지면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상존하는 위험한 가능성입니다.
이래서 "늘 깨어 있어라." 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악의 유혹이 늘 상존하는 엄중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최고의 유일한 대안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처럼 내 삶을 하느님의 나라의 꿈이 실현되는 장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삽니다. 꿈이 있어야 타락하지도 않고 유혹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꿈이 있어야 품위있는 삶입니다.
바로 하느님 나라의 꿈이자 희망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꿈의 사람이었고, 하느님의 나라를 평생 화두이자 꿈과 비전으로 삼아 현실화 시키려 노력했던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하느님 나라의 꿈의 실현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참 좋은 비유가 됩니다. 오늘 하느님의 나라의 두 비유가 참으로 심오합니다.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처럼 시작은 미미해도 점차 확대되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모두에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동체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두 필수 실천 사항을 강조하곤 합니다.
“1.건들이지 마라.
2.그냥 놔두라.”
이건 공동체 삶의 지혜이자 사랑이요, 결코 무관심의 방치가 아니라, 이웃에 대한 ‘깨어 있는 사랑’의 반영이요, ‘침묵과 경청, 겸손’의 반영이요, ‘무한한 신뢰와 존중’, ‘인내의 기다림’의 반영이요, ‘형제들의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라’(성규72,5)는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잘 실현되는데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잘 일하실 수 있도록 깨어 기다리며 인내하는 일이요, 참으로 필요하다 싶을 때 분별의 지혜를 발휘하여 조심스러이 도와 드리는 일입니다. 절대로 하느님의 일에 주제넘게 경솔히 개입하거나 관여하거나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수도원의 채소농사나 배농사의 경우처럼 마냥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씨앗이, 나무가 잘 자라 좋은 열매를 맺도록 적절한 때 거름을 주고 가지치기도 하며 병충해에 대해 약도 치듯이, 참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잘 실현되도록 지혜로운 협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아버지는 농부’(요한15,1)라 말씀하셨듯이 누구보다 하느님을 닮은 이들이 농부들입니다. 이는 그대로 교육의 원리와도 통합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 나라의 교육에 정통한 예수님이 오늘 오늘 두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참으로 우리 모두 악의 씨앗이나 부패의 씨앗이 자라나지 않도록 막아주시며, 하느님의 나라의 꿈이 잘 실현되도록 좋은 도움을 주십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6).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수도회와사도생활단 > 오늘의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