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도회와사도생활단
오늘의 강론
  :  수도회와사도생활단   >   오늘의 강론
오늘의 강론

[이수철 신부] 26.01.22 연중 제2주간 목요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1-22 09:29 조회293회 댓글0건

본문

2026.1.22.연중 제2주간 목요일                                                     

1사무 18, 6-9;19,1-7 마르3, 7-12

 

 


하느님 중심의 자비와 지혜의 삶

<무지에 대한 답>


 

 

“하느님께 의지하여 두려움 없으니,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시편56,5)

 

문명의 대혼돈의 시대입니다. 역설적으로 문명의 야만시대같습니다. 예나 이제나 사람이 문제요 인간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바로 동방영성에서 특히 강조하는 인간 무지가 문제입니다. 무지한 인간은 인간의 정의같습니다. 이래서 끝없이 강조되는 회개요 회개의 여정입니다.

 

무지한 인간을 방치한채 이뤄지는 AI 문명은 사상누각, 모래위의 집같습니다. AI의 거부가 아니라 사람이 되는 공부를 우선하라는 것입니다. 무지한 인간에 대한 답은 AI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입니다. 지옥에는 한계가 없다 합니다. 탐욕이 바로 그러합니다. 성장신화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지속불가능한 성장 추구가 인류 스스로 무덤을 파는 듯 합니다. 

 

서서히 전개되는 자연파괴와 더불어 끝없이 양산되는 쓰레기들과 날로 늘어나는 에너지 소비가 인류의 종말을 앞당기는 듯 합니다. 도대체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의 고질적 질병이 무지입니다. 무지의 어둠이요 무지에 눈먼 사람들입니다. 예나 이제나 무지로 인해 반복되는 악순환의 현실입니다. 

 

작금의 국내외의 적나라한 현실이 이를 입증합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누가 민주주의의 미국이 저렇게 제국주의로 변하리라 생각했습니까? 옛 제국의 무소불위의 황제를 연상케 하는 대통령입니다.

 

곳곳에 출몰하는 무지와 탐욕의 인간 괴물들입니다. 일촉즉발, 3차 대전이 일어날 듯 합니다. 누구나 희구하는바 평화이나 현실은 전쟁입니다. 평화의 이상에 전쟁의 현실입니다. 그래도 답은 평화뿐입니다. 그러니 전쟁은 온갖 지혜와 노력을 다해 막고 피해야 합니다. 레오 교황이 요즘 특히 강조하는바 평화를 위한 기도와 노력입니다. 정말 마음의 중심을 찾고 잡아야 할 때입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을 떠난 업보입니다. 무지에서 파생되는 탐욕, 질투, 분노, 어리석음입니다. 이런 무지에 대한 답은 하느님 중심의 삶뿐입니다. 자비와 지혜의 하느님이 답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전사, 평화의 전사로서 늘 깨어 무지와의 전쟁, 영적전쟁에 임해야 할 우리 신자들입니다. 살아 있는 한 계속될 무지와의 전쟁입니다. 만고불변의 답은 하느님 중심의 삶뿐입니다. 

 

오늘 말씀이 시공을 초월하여 예나 이제나 영원히 반복되는 적나라한 인간 무지의 현실과 더불어 그 답을 보여줍니다. 빛과 어둠의 대결은 예나 이제나 영원히 반복되는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결론은 어둠이 빛을, 악이 선을, 거짓이 진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적대적인 환경중에도 한결같이 가르침과 치유활동을 전개하신 예수님이요 오늘 복음에서는 온통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로 가득한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흡사 어둠 속에 <빛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빛의 주님을, 평화의 주님을, 구원의 주님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곳곳에서 가르치시고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온 인류의 교사이자 의사>이신, 온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찾아 온 무지의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빛> 예수님만이 <무지의 어둠>을 몰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치유받고자 끊임없이 예수님께 모여듭니다. 궁극의 원인인 무지의 죄와 병으로 인한 인간의 병고들이요 악령들입니다. 정말 육신의 치유에 앞서 무지의 치유가 근본적임을 깨닫습니다. 

 

약중의 약이, 치유중의 치유가 하느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는 일입니다. 무지의 악, 죄, 병에 대한 답이자 약은 살아 계신 주님뿐이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영들은 주님만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외치면 아직 때가 아니기에 주님은 즉시 이들에게 함구령을 내립니다. 

 

오늘 제1독서 사무엘 상권은 다윗과 사울의 대결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이 둘의 싸움은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승리에서 기인합니다.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이 노래를 듣고 사울은 질투에 눈멀어, 또 왕권이 다윗에게 넘어갈 것을 우려하여 다윗을 죽이려 시도하고 사위로 삼아 그를 묶어두려 합니다. 

 

인지상정, 사울의 처지에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하느님 중심의 삶에 확고했다면 하느님의 뜻을 찾았을 것이며 질투심도 어느 정도 자제할 수 있었겠지만 참 힘들어 보입니다. 앞으로도 사울의 다윗을 죽이려는 시도는 계속되지만, 하느님 중심의 삶과 더불어 하느님의 인도를 받는 다윗을 결코 해칠수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이 둘 사이에 중재자로 혜성같이 등장한 주인공이 사울의 아들 요나단입니다. 인류역사에 길이길이 회자되는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입니다. 아버지 사울을 설득하는 진정성 가득한 <충신이자 효자>인 요나단의 충고에 사울도 마음을 돌립니다.

 

“임금님, 임금님의 신하 다윗에게 죄를 지어서는 안됩니다. 다윗은 임금에게 죄를 지은 적이 없고 그가 한 일은 임금님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겼고, 주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다윗을 죽이시어, 죄없는 자의 피를 흘려 죄를 지으려 하십니까?”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다윗을 결코 죽이지 않겠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했던 다윗에게 친구이자 수호천사가 된 요나단을 예비하신 하느님의 지혜가 참 고맙고 놀랍습니다. 논어 이인편(里仁篇)에 나오는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이란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질투심에 눈먼 사울을 일깨우는 충신이자 효자이면서 다윗의 친구로 그 우정에 충실했던 참 아름다운 사람, 요나단의 지극정성의 중재가 참 감동적입니다. 

 

무지의 질투에 대한 궁극의 답은 하느님 중심의 자비롭고 지혜로운 삶뿐이겠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로 우리를 무지의 어둠과 질곡에서 벗어나 하느님 중심의 자비롭고 지혜로운, 자유롭고 평화로운 빛의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무서움이 덮치는 그날,

 이 몸은 당신께 의지하오리다.”(시편56,4).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 대표자 : 백남일 요셉 | 사업자번호 : | Tel : 02-776-3189 | Fax : 02-773-9886
주소 : 서울 중구 정동길 9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313호 | E-mail : cmsmonk@hanmail.net
Copyright © 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All Rights Reserved.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