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5.12.16 대림 제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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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5-12-16 09:29 조회4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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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6.대림 제3주간
스바 3,1-2.9-13 마태 21,28-32
회개의 여정, 회개의 훈련, 회개의 일상화
“늘 새로운 시작”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시편34,2)
사랑의 찬미 찬양이요, 이와 함께 가는 회개와 믿음이요, 찬미 찬양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몇 년째 날마다 기상후 취침전 집무실 예수님의 십자가와 태극기 앞에서 바치는,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대한민국-한반도 만세, 가톨릭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수도원 만세>, 만세칠창의 간절한 기도는 살아 있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또한 회개의 여정에 참 좋은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장 쉬운 것이 남판단하는 것이고 가장 힘든 것이 자기를 아는 것입니다. 자기를 아는 겸손이 바로 지혜입니다. 참 힘든 마음의 병이 무지요 무지에는 회개만이 답答이자 약藥입니다. 회개의 여정을 통해 자기를 아는 겸손이요 무지로부터 점차 해방되어 자유로워집니다.
회개와 겸손이 한셋트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회개도 없고 회개없이는 겸손도 없으니, 결국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입니다. 세월흘러 나이들어가면서 저절로 지혜로워지고 자비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반드시! 회개와 더불어 날로 주님을 닮아 갈때 지혜로워지고 너그러워지고 자비로워집니다. 대림시기 역시 회개의 여정을 새로이 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며칠전 받은 메시지도 회개의 여정, 정주의 여정에 참 좋은 깨달음이 됩니다.
“신부님, 항상 같은 자리에 계셔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요셉수도원은 제게 있어 영혼의 고향같은 곳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 기쁜 소식이 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회개의 여정을 통해 늘 새로워질 때 비로소 <안주>가 아닌 참된 <정주>의 수도공동체가 될 것이며, 세상 광야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비로서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될 것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지혜도 회개를 통한 깨달음이 분명합니다.
“삶을 돌아보면 기뻐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굶지는 않으니 애써 다시 근심하지 마라.”<다산>
과도한 욕심을 자제하는 것, 역시 회개의 은총입니다. 정말 무지에 답은 회개뿐이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와 더불어 날로 익어 성숙해가는 <성화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도 회개요 어제와 같은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어제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던 무지한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바로 회개의 대상임을 봅니다.
참 아이러니한 역설이 누구보다 지혜로워야 할 종교지도자들이 무지하고 어리석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지식과 함께 가는 지혜가 아니라 회개로 겸손해진 이들에게 선사되는 지혜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한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음이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보게 합니다.
“싫습니다.” 대답했다가 회개로 마음을 바꿔 포도밭에 간 맏아들과, “가겠습니다.” 대답했다가 가지 않은 다른 아들중 누구인지 자신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맏아들이 상징하는 바, 회개의 사람들인 세리와 창녀들이요, 다른 아들이 상징하는 바, 회개를 잊은 무지한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입니다. 예수님의 폭탄같은 충격적 말씀이 이들은 물론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얼마나 내적으로 완고하게 굳어져 있는 이들 종교지도자들인지 다음 예수님 말씀에 깊은 좌절감이 배어 있음을 봅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회개와 함께 가는 믿음이요 참된 회개없이는 겸손도, 믿음도 없습니다. 새삼 거듭 확인하는 바. 무지에 답은 회개뿐이요 회개와 더불어 참된 겸손과 믿음입니다.
오늘 제1독서 스바니아서 역시 <회개>가 주제입니다. 예루살렘의 회개, 민족들의 회개, 이스라엘의 회개입니다.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도성, 더럽혀진 도성, 억압을 일삼는 도성,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않는구나.”
격렬한 회개의 촉구는 예언자들의 공통적 특징입니다. 회개 또한 우리의 분투의 노력이자 동시에 주님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그때에 나는 민족들의 입술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리라....그날에 나는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그날의 그때>는 대림시기 <오늘의 이때>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상징하는 바, 회개의 여정중에 깨끗해진 겸손하고 진실해진 영혼들입니다. 그러니 회개의 여정중 회개의 훈련을 통한 회개의 일상화가 참 필요하다 싶습니다.
이런면에서 회개의 일상화를 이뤄주는 회개의 시스템 같은 수도원의 구체적 <기도와 노동과 공부>가 조화와 균형을 이룬 일과표가 참 감사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회개의 여정에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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