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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신부] 25.12.15 대림 제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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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5-12-15 09:01 조회4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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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5.대림 제3주간 월요일                                                

민수 24,2-7.15-17 마태 21,23-27

 

 


권위의 힘, 섬김의 권위

“주님은 참 권위의 원천이자 모범이시다”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시편25,4)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구암리카페로 변한 제 고향집과 제 수도원 집무실이 우연의 일치처럼 신비롭게 생각됩니다. 주님 안에서 상담과 고백성사차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는 영적쉼터, 영적카페 역할을 하는 수도원 제 집무실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바칠수 있는 참 짧고 좋은 기도가 십자성호를 그으며 바치는 성호경입니다. 성호경의 생활화가 참 좋은 영적유익이 됩니다. 두 성인의 성호경 예찬입니다.

 

“십자성호를 긋지 않고 절대 집을 나서지 마라. 그것은 그대에게 지팡이며 무기이고 무너뜨릴 수 없는 요새가 될 것이다. 그대가 그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것을 보면, 인간도 악마도 감히 그대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이 성호는 그대가 '주님의 전사'이며 악마와 대적할 준비가 되어 있고, 정의의 왕관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십자가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는가? 그것은 죽음을 이겼고, 죄를 없앴으며, 지옥을 비웠고, 사탄을 물리쳤고, 인류를 구원하였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347-407)>

 

“죄에 물든 내 몸에 성호를 그을 때마다 온갖 선한 생각들이 내 안에서 일어나, 잠자고 있던 신성한 힘이 회복된다.”<성 헨리 뉴먼 추기경(1801-1890)>

 

어제 대림 제3주일 <가우데테 주일>에 게시판에 좌우명 삼고자 써서 붙여놓은 성구입니다.

“Rejoice in the Lord always!”(기뻐하여라, 주님 안에서, 늘!)

오래된 기쁨은 없습니다. 기쁨은 늘 새로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은 믿는 이들의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레오14세 교황의 지혜로움과 부지런함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못지 않으니 가톨릭교회의 복입니다. 레오 교황의 말씀도 좋은 깨달음을 줍니다.

“예수님 성탄은 희망의 궁핍한 우리 시대를 위한 빛의 선물이다.”

“꽃들은 감옥들 안에서도 피어날 수 있다(Flowers can bloom even in prisons)”

“예수님의 말씀은 절망의 감옥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우리가 눈이 가려 보지 못할 뿐 희망은 살아 있는 보석처럼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옛 현자의 지혜도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타협의 반복이다. 그러한 비겁함과 화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다산>

“함부로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고, 깊은 물에 들어가지 않으며,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구차하게 웃지 않는다.”<예기>

 

어제는 멋지게 노년을 보내는 70대 후반 교대 동창들의 춤추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우아하여 많은 이들과 동영상을 나눴습니다. 마침 은퇴를 앞둔 50년 이상을 춤춰온 고전무용 여교수가 방문하여 유익한 대화를 나눴고, 다음 유쾌한 덕담도 나눕니다.

“춤은 바로 임향한 그리움을 몸으로 쓴 시입니다. 자매님은 평생 몸으로 시를 써오셨네요! 부럽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우리가 <노래>로 바치는 시편 <고백> <기도>에 <춤>까지 곁들인다면 최고로 완벽한 하느님 찬미가 될 것입니다.”

 

권위주의는 나쁘지만 권위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누구나 내면 깊이에서 승복할 수 있는 참 권위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권위의 실추는 신뢰의 실추만큼 개인이나 공동체에는 큰 재앙입니다. 한 번 실추된 권위나 신뢰의 회복은 요원하기 때문입니다. 참 권위는 하늘로부터,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옵니다. 참 권위의 힘이요 참 권위는 섬김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바로 참 권위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하느님을 그대로 반영하는 그리스도 예수님은 참 권위의 모범이자 원천이 됩니다. 

 

오늘 마태복음과 제1독서 민수기는 참 권위의 소재를 다룹니다. 오늘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예수님의 권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성전정화는 물론 예수님의 부적절해 보이는 행위들에 대한 권한을 누가 줬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상지혜를 발휘하여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시니 이런 대응 역시 하늘로부터 온 지혜입니다.

 

“나도 너희에게 한가지 묻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진퇴양난, 딜레머입니다. 활짝 열린 눈에는 하늘로부터 온 것이 분명하지만 무지에 눈먼, 비겁한 적대자들은 이런 진리를 무시합니다. 하늘에서 왔다하면 왜 믿지 않느냐? 물음에 답할 길이 없고, 사람에게서 왔다하면 하늘로부터 왔음을 믿는 뭇 여론의 매를 감당할 수 없자, 이들은 “모르겠소,” 대답합니다.

 

예수님 역시, 즉시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대답하니 이 또한 하늘로부터 온 빛나는 분별의 지혜입니다. 무지에 눈먼 이들에게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오늘 제1독서 민수기는 발라암의 세 번째와 네 번째의 신탁이 소개됩니다. 하느님의 영이 내리자 발라암은 신탁을 선포합니다. 놀랍게도 대림의 기쁨과 메시아 탄생의 성탄이 예고됩니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아는 이의 말이다. 야곱아, 너의 천막들이, 이스라엘아, 너의 거처가 어찌 그리 좋으냐! 골짜기처럼 뻗어 있고, 강가의 동산같구나...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예수님처럼 발라암의 권위와 권한은 그대로 하늘로부터 온 것임이 명약관화 하게 드러납니다. 볼 눈이 있는 자라면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하늘로부터 선사되는 권위와 권한임을 깨닫습니다. 

 

여기서 참 권위의 이해를 위해 <권위>라는 단어의 깊은 뜻을 나누고 싶습니다. 라틴어 <auctoritas> 는, 동사 <augere>에서 파생된 추상명사로 이 동사의 뜻은 <증가시키다, 더 크게 만들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참 권위를 가진 사람은 타인에게 강제적인 힘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로 타인 안에 있는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돕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예수님의 섬김의 권위와 일치합니다. 예수님은 결코 강압적인 권위를 행사하지 않았고, 섬김을 받으로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말씀처럼 사람들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본래 되어야 할 모습대로 성장하도록 이끌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의 참 권위는 그대로 교육의 원리와도 통합니다. 인류 최고의 의사이자 교사이셨던 주님은 참 권위의 원천이자 모범임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날마다 이런 주님을 모시는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참 권위를 지닌 섬김의 사람, 지혜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주님, 저희에게 당신 자애를 보여 주시고,

 당신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시편85,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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