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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신부] 25.12.10 대림 제2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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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5-12-10 09:05 조회4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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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0.대림 제2주간 수요일                                                      

이사 40,25-31 마태 11,28-30

 

 

 

희망의 힘, 희망의 빛, 희망의 약, 희망의 훈련

“희망의 원천인 하느님"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103,1-2)

 

얼마전 고백성사후 써드린 보속 말씀 처방전이 너무 좋다며 감사하던 자매가 생각납니다. 정말 희망이 필요하다 싶어 '이스라엘' 대신 자매 이름을 넣어 다음 시편 성구를 써드렸습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하느님께 두어라.”(시편131,3)

 

여러분은 과연 희망이 있습니까?

무슨 희망입니까? 희망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희망의 기쁨이요 희망의 힘이요 희망의 빛이요 희망의 인내입니다. 희망에서 샘솟는 기쁨이자 힘이요 희망의 빛이 절망의 어둠을 몰아내며 희망이 있어 끝까지 견뎌내는 인내입니다. 약중의 약, 명약이 희망입니다. 희망의 명약이 없으면 백약이 무효입니다. 다 있어도 희망이 없으면 결코 행복하다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여기 불암산 기슭 요셉수도원에 37년째 정주하면서, 저에게 늘 놀랍고 감사하는 것은 간혹 답답한적은 있었지만 결코 절망, 실망, 원망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믿음이 있다면 이런 삼망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감동, 감탄의 삼감의 삶이자 진실, 성실, 절실의 삼실의 삶일 것입니다. 70대 넘어 산책중 요즘 역시 목청껏 부르는 가장 애창하는 동요가 어렸을 때 부른 <바다>입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어제 오늘 말씀 묵상중 갑자기 떠오른 <희망의 속삭임>이라는 노래도 추가할 예정입니다. 역시 예전 중학교 시절 참 많이 불렀던 노래입니다. 시간되면 한번 찾아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천사의 음성 내귀를 두드리네

 부드럽게 속삭이는 앞날의 그언약을

 어두운 밤 지나가고 폭풍우 개이면은

 동녘엔 광명의 햇빛 눈부시게 비치네

 속삭이는 앞날의 보금자리

 즐거움이 눈앞에 어린다.”

 

희망이 있어 끊임없이 샘솟는 기쁨이요 노래입니다. 단테의 신곡중 지옥편 지옥문 입구에 붙어있는 “여기에 들어오는 그대, 희망을 버려라”라는 구절입니다. 희망없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희망의 철학자 독일의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라는 책에서 다섯을 꼽습니다.

 

1.인간은 빵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희망을 먹고 산다.

2.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이미 삶자체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3.희망의 힘이다. 희망이 있는 사람을 아무리 좋은 조건에서도 삶을 포기하지만 희망이 있는 사람은 최악의 상태에서도 극복하게 된다.

4.희망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5.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행복을 약속해 준다.

 

인간 삶에 희망이 얼마나 본질적 중요성을 지니는지 깨닫습니다. 희망 역시 평생 배움과 훈련이요, 이를 통해 희망의 습관화, 희망의 일상화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공동체가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전례가 희망의 참 좋은 배움과 훈련이 됩니다. 그러니 <희망하는 인간>이 인간의 정의라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희망중의 희망이 참 희망이 예수님이자 하느님입니다. 바빌론 유배중 희망과 신뢰를 상실하고 낙심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일깨우는 <희망의 예언자> 이사야입니다. 그대로 오늘날 시공을 초월하여 희망의 빛 희미해져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이사40,28-31)

 

단숨에 읽혀지는 희망과 신뢰, 활력의 메시지입니다. 바로 이런 희망과 활력의 원천인 하느님이 우리의 하느님입니다. 이런 하느님과 <하닮의 여정>중에 깊어지는 우정중에 하나될수록 넘치는 활력에 빛나는 삶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하느님의 아드님,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입니다. 

 

바빌론 유배가 아닌,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세상사에 시달리며 무거운 짐을 지고 고달프고 고단하게 광야인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초대하시고 환대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역시 단숨에 읽혀지는 군더더기 설명이 필요없는 순복음 말씀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11,28-30)

 

진짜 희망과 신뢰, 활력의 쉼터와 샘터와 배움터는, 진짜 영원한 안식처이자 정주처이자 피난처는 주님뿐입니다. 역시 값싼 은총이 없듯이 값싼 희망도 안식도 없습니다. 부단히 주님을 공동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주님의 사랑의 학원>에서 동료들과 더불어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주님의 <섬김과 나눔>을 배워감으로, 내 불편한 멍에는 주님의 편한 멍에로, 내 무거운 짐은 주님의 가벼운 짐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진짜 참 안식의 평화입니다. 바로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닮의 여정>중에 주님과 하나되어 나이에 관계없이, <희망의 순례자>가 되어 <영원한 청춘>의 젊음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은 죽음에서 네 생명 구하여 내시고

 은총과 자비로 관을 씌워 주시는 분,

 한평생을 복으로 채워주시니,

 네 청춘 독수리마냥 새로워지도다.”(시편103,4-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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