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5.12.05 대림 제1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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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5-12-05 08:55 조회44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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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5.대림 제1주간 금요일
이사 29,17-24 마태 9,27-31
개안開眼의 여정
“갈망, 만남, 개안, 알림”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27,1)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평생 무지에 눈먼 눈뜬 소경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끊임없이 새롭게 만나야 눈이 열려 날마다 순수와 진실, 참기쁨과 참행복의 진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12월2일 귀국한 교황 레오 14세의 활동은 계속됩니다. 교황의 믿음과 체력이 대단합니다. 12월4일 어제는 몽골 대통령과 슬로박 공화국 대통령 두분을 접견했습니다. 귀국시 기내에서의 인터뷰 한 대목도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나는 은퇴를 생각했었으나, 대신 하느님께 복종하기로 했다.”
(I was thinking of retiring, but instead I surrendered to God)
판단의 잣대는 내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임을 깨닫게 하는 귀한 가르침입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대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대로 결정하여 실행할 때 내적평화와 기쁨일 것입니다. 어제 읽은 다음 기사 내용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AI강국보다 더 시급한 것은 윤리의 회복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법이 아무리 정교해도 윤리를 버린 사회는 결국 스스로를 파괴한다.”
이어 어제 읽은 어느 건축가의 "시간을 조각하는 건축, '노후화'와 '에이징'의 미학으로" 라는 깊고 아름다운 글도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좋은 답이 됩니다.
“‘자-알 늙었다!’는 말은 건물에도, 사람에게도 듣기 힘든 최고의 찬사일테다. 건축의 관점에서 ‘노후되는 것’과 ‘나이를 잘 먹는 것’(aging)은 전혀 다른 가치를 내포한다.
돌담의 이끼는 역사를 담고, 나무기둥은 색이 깊어지며 견고함을 더한다. 수백년된 고궁의 돌담이나 한옥의 빛바랜 단청과 서까래가 ‘고풍스럽다’는 찬사를 받는 것은, 이 재료들이 시간의 흔적을 훼손이 아닌 축적과 숙성의 과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시간의 풍파가 남긴 흔적은 재료의 질감을 풍부하게 만들고, 서사를 입히며, 건축물에 ‘품격’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옷을 입힌다. 대리석과 금은 비싼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이 시간의 흔적은 시간외에는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다.”<임우진;한겨레2025.12.3. 24면>
이래서 품격있는 삶을 위해, 평생 성화의 여정, 예닮의 여정에 충실하고 항구해야 함을 배웁니다. 지난 밤 많은 첫눈이 내렸습니다. 떠오르는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라는 자작 애송시입니다.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
밤 하늘의
초롱초롱 별빛 영혼으로
사는 이,
푸른 하늘 흰구름 되어
임의 품안에
노니는 이,
떠오르는 태양 황홀한 사랑 동녘 향해
마냥 걷다가
사라진 이,
첫눈 내린 하얀길
마냥 걷다가 사라져 하얀
그리움의 된 이,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1999.2.28.>
아무리 세월 흘러도 세월의 풍화작용을 피해가는 순수와 열정의 진선미眞善美, 신망애信望愛의 영혼들이 이러할 것입니다. 이어지는 <임의 편지>라는 자작시도 생각이 납니다.
“계속 쏟아지는 흰 눈발들
임 보내시는 천상편지
하얀 그리움 가득 담겨있는 임의 편지
잔잔히 물결치는 마음
글씨 보이지 않아도 다 알아 보겠네.”<2001.1.28.>
이 모두들 <개안의 여정>에 도움이 됩니다. 오늘 주님께서 눈먼 두 사람을 고쳐주신 예화는 늘 들어도 새롭습니다. 복음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무디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마음의 눈을 활짝 열어 줍니다. 그리하여 이 복음을 대할 때 마다 강론 제목은 무조건 <개안의 여정>으로 합니다.
우리를 눈멀게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지요! 눈떳다 하나 눈뜬 소경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무지로 인한 오해와 착각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 참 많습니다. 탐욕, 분노, 질투, 교만, 허영, 환상, 편견, 선입견 등 온갖 무지가 우리를 눈멀게 합니다. 무지에 눈멀었을 때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못봅니다.
대림시기는 하늘나라의 꿈이 실현되는 은총의 시기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제1독서 이사야 예언자의 꿈은 탄생하실 예수님을 통해 실현됨을 앞서 보여줍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고무적인 하느님의 꿈인지요!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 겸손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하리라...정신이 혼미한 자들은 슬기를 얻고, 불평하는 자들은 교훈을 배우리라.”
바로 이런 하느님의 아름답고 빛나는 꿈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실현됩니다. 복음의 눈먼 이들은 갈망으로 이미 내적으로는 눈이 열려 있는 이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자 자비송을 통해 갈망이 표현되고 주님을 만나 믿음의 눈이 활짝 열리니, 실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in-sight)”의 눈입니다.
눈먼이들과 예수님의 대화가 간명하기가 선사들의 선문답같고, 사막 스승을 찾았던 구도자들의 문답처럼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진실하고 절실하면 말도 글도 짧고 순수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예, 주님!”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생명과 빛의 예수님을 만나니 갈망의 치유요 해소입니다. 눈먼 이들의 갈망의 믿음에 예수님의 치유의 응답입니다. 갈망의 믿음이 없었으면 주님을 만나지도 못했고 평생 소경으로 살았을 두 눈먼이들입니다.
불건전한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던 주님은 이들에게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당부하지만, 이들은 나가서 널리 알리니 복음 선포자가 됩니다. 진리의 기쁨, 구원의 기쁨을 알리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원초적 영적 본능입니다.
참으로 갈망의 믿음이 있어 주님을 만나 눈이 열렸고, 이어 복음 선포의 사람이 된, 두 눈먼이들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마다 우리 눈을 열어주시고 개안의 여정에 항구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시편27,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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