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10.16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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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10-16 11:37 조회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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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1,11-14 루카12,1-7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 찬양이 답이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
주님을 찬송하고 찬미 노래 불러라“(시편33,1-2)
하느님 찬미, 찬양의 기쁨으로, 행복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평생 하느님 찾는 맛으로 살아가는 수도자들입니다. 기상하자마자 “하느님 만세!”로 시작하는 하루입니다. 인간 모두에게 궁극의 기쁨과 행복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답은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아무리 인간이, 내가 누구인지 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과 재앙, 방황과 혼란, 불안과 두려움은 하느님을 잊음에서, 떠남에서 기인합니다. 옛 두 편의 자작시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분 역시 하느님입니다.
“칭찬받든 비난받든
존경받든 무시당하든
요지부동
하느님 앞에서 더도 덜도 아닌
나일뿐이다”<요지부동; 1998.10.8.>
“세상에
보잘 것 없는, 하찮은 것이 어디 있나
하느님께는 모두가 소중하다
창고 밖 가난한 가을 뜨락, 아무도 눈 길 주지 않는
들꽃들, 여뀌, 쇠별꽃, 개망초, 배초향, 개쑥부쟁이…
참 아늑하고 편안하다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구나
하느님 가난한 뜨락, 겸손의 들꽃들로
조촐히 소박하게 옷 입혀 주셨구나”<모두가 소중하다; 1998.10.10.>
놀랍습니다. 여기 수도원에서 28년 전 50세 때 이때쯤의 자작시들을 오늘 78세 노년에 인용하다니요! 제 집무실을 찾는 분들의 <소박하다>란 평에도 만족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느님은 저에게 영원한 화두, 영원한 사랑, 저의 모두입니다. 이런 하느님 중심의 삶만이 안정과 평화의 참된 삶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
수도원 중앙 예수님 부활상 아래 바위 판에 새겨 진. 수도원을 찾는 이들에게 위로와 평화를 주는 주님 말씀입니다. 성서에 무려 이 말마디가 365회 나온다하니, 주님은 날마다 “두려워하지 마라” 다독이며 우리를 격려하시며 용기를 북돋우십니다. 인간 모두의 마음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원초적 정서가 바로 두려움입니다.
바로 이런 두려움의 불안에서 기인하는 집착의 탐욕이요 무수한 전쟁들입니다. 모든 재앙의 뿌리에는 바로 <두려움>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미래의 두려움, 현재의 두려움 등 두려움에 포위되어 살고 있는 우리 사람들입니다.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처방이 적극적입니다.
“너희는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위선이나 가면 역시 개방에 대한 <두려움>이 저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빛이신 하느님 앞에서는 비밀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중심의 복음 선포의 삶만이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예수님의 설교 말씀이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두려움의 정체를 환히 밝혀 줍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두려워할 것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혼의 죽음입니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참으로 두려워할 분은 우리를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지니신 하느님 한 분 뿐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외경의 두려움이 온갖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부끄러움이, 외경의 두려움이 세상 두려움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줍니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 하느님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바로 이것이 진짜 복음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이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여 삶의 중심에 모실 때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그러니 결코 우연은 없고 모두가 하느님 섭리의 손길 안에 있습니다.
모사는 재인이요, 성사成事는 인명은 재천입니다. 하느님 아닌 누구도 우리를 손대지 못합니다. 발생하는 일 모두가 하느님의 뜻은 아니어도 하느님 허락 없이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랑하고 감사할 대상은 그 누구도 아닌 <하느님>뿐이요, 부끄러워 할 것은 하느님 뜻을 거스른 <죄>이지 <병>이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무지가 탐욕과 두려움의 뿌리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빛> 안에 머물 때 탐욕과 두려움, <무지의 어둠>도 사라집니다. 이래서 하느님 사랑의 찬양과 찬송, 찬미노래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바로 두려움에 대한 에페소서의 주님 찬미가가 답을 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된 우리 모두를 향한 사도 바오로를 통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만이 우리의 참기쁨이며 참행복입니다. 성령의 은혜로 끊임없이, 한결같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삶>이 우리의 자랑이요 존재이유이자 두려움에 대한 궁극의 처방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를 참으로 자유롭게, 평화롭게 합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
그분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주님은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모든 사람을 살펴보신다.”(시편33,12-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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