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1.02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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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1-02 09:10 조회38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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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2.금요일
성 대 바실리오(330-379)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330-390) 기념일
1요한 2,22-28 요한 1,19-28
세례자 요한의 증언과 우리의 증언
“증언자로서의 삶”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어제 새해 첫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날 있었던 각별한 모임의 감미로웠던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제가 혼인주례한 1호 부부의 주도로 가족에 속하는 13명이 수도원 대축일 미사에 참여했고 이어 집무실에서 그중 젊은 부부의 태아 축복식이 있었습니다. 이후 점심식사를 함께 했고 카페에서 차와 빵도 나눴습니다. 얼마나 화기애애한 화목한 가정공동체인지 그대로 발광체 주님을 반사하는 참 아름답고 평화롭고 행복한 반사체 공동체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아직 구입하지 못해 작년 다산 어록을 참고하지만 다시 봐도 좋습니다. 반복되는 현자의 말씀들이지만 새로운 느낌입니다.
“결과를 두려워하기 전에 먼저 시작하라. 모든 시작은 위대하다.”<다산>
“지극히 어려운 일도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세상의 큰일도 그 시작은 미약하다.”<도덕경>
현자들의 말씀이 좋은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하루하루 용기를 내어 늘 새로운 시작의 삶을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엊그제 2025년 12월 31일은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3주기 기일이었습니다. 늘 ‘하느님의 얼굴을 찾을 것(to seek face of God)’을 가르쳤던 교황입니다. 또 영원한 삶이 하느님과의 친교로 이뤄진다면, 이미 지상 삶에서 우리 스스로 준비함이 적절함을 강조하셨고, 교황 친히 열정적인 전 삶을 통해 이 진리를 입증하셨습니다.
어제 영문주석에서 읽은, 우리가 옛 해를 보낼 때 기억해야 할 두 말마디, “Thanks and Yes(감사와 순종)”을 잊지 못합니다. 과거의 크고 작은 모든 사건들을 뒤돌아 보고(to look back) “감사(Thanks)”를, 장차 일어날 모든 일에 기대와 더불어 수용할 것을 예견하고(to look forward) “순종(Yes)”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늘 기억해야 할 “Thanks and Yes” 두 말마디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입니다.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을 완벽하게 증언한 분이 세례자 요한입니다. 예수님이 발광체(發光體)라면 세례자 요한은 그대로 주님을 반사함으로 증언한 반사체(反射體)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삿된 이단이 스며들 틈이 없습니다.
참으로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하여 겸손할 때 참된 증언자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라는 질문은 세례자 요한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신원에 대한 물음입니다. 다음 세례자 요한의 겸손한 증언을 통해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관계가 투명히 드러납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자신의 신원을 말했지만, 적대자들이 잘 못 알아듣고 ‘왜 세례를 주느냐?’는 무지한 질문에 더 분명히 자신의 신원을 밝히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우리 모두를 대변한, 예수님의 증언자이자 반사체인 세례자 요한의 겸손하고 진솔한 답변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자의 신원은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모두에 해당된다 싶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존재이유요 우리의 신원을 알게하는 거울같은 분입니다. 사도 요한의 주님 안에 머무르라는 간곡한 당부가 참 고맙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이 오실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기에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참된 겸손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그분의 교회 공동체 안에 항구히 머물러 정주할 때 변질되거나 부패하지 않고 참 좋은 증언자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성 아타나시오와 성 요한 크리소스 토모와 더불어 동방의 4대 교부에 속하는 두 분,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교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고대성’, ‘정통교리’, ‘생활과의 조화’, ‘교회의 승인’등 네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그러니 교부들은 세례자 요한이나 사도들처럼 예수님을 잘 반사하는 증언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기념하는 두 주교 학자가 그런 분이셨습니다.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는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절친이 되었고 아테네에서 함께 공부했으며, 둘 다 나란히 사이좋게 주교와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바실리오는 아리안 이단과 싸웠던 조직자였던 반면에 그레고리오는 더 많이 관상적이자 시적인 분이었습니다.
성인들로 가득한 명문가 출신의 바실리오는 330년경 태어났고, 그의 고향인 카파도키아의 체사레아의 주교가 되기 전에는 수도승이자 독수자였습니다. 그는 신학자였을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도 각별한 관심을 쏟았던 사목자 주교였습니다. 또 그는 바실리오 규칙으로 알려진 수도자 규칙서를 만들었고 동방교회 수도자들이 널리 사용했습니다. 그는 379년경 약 49세로 선종합니다.
성 그레고리오는 카파도키아의 나지안조에서 역시 330년경 주교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바실리오처럼 일찍 수도생활에 합류합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되고 사시마의 주교가 되고 이어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직에서 물러난후 그의 남은 여생을 나지안조에서 공부와 기도가 조화된 독실한 삶을 살다가 바실리오보다 10년 늦게 389년경 선종합니다.
절친의 우정관계에 있던 두분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안 이단과 치열한 싸웠고,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오의 가르침은 니체아 공의회(325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참으로 두 분 모두 온힘을 다해 정통교리의 수호자로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여 주님을 잘 반사하며 증언했던 삶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이 발광체라면 우리 모두는 그의 반사체입니다. 또 예수님은 우리의 거울입니다. 늘 예수님이 거울에 비춰봐야 내가 누구인지 알아 날로 주님을 닮은 주님의 참된 증언자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모두이자 존재이유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 <증언의 여정>에, 사랑과 겸손의 참된 주님 증언자로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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