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도회와사도생활단
오늘의 강론
  :  수도회와사도생활단   >   오늘의 강론
오늘의 강론

[이수철 신부] 26.10.19 연중 제 29주간 월요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10-19 13:06 조회4회 댓글0건

본문

26.10.19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에페2,1-10 루카12,13-21


탐욕, 두려움의 무지에 대한 답은 “하느님 중심의,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뿐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수도생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강조해온 강론 주제중 하나가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답은 하느님뿐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무엇인지 물어도 하느님 없이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참으로 인간이 되는 길은 하느님을 항구히 찾고 닮는 길뿐입니다.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찾는 삶입니다. 오늘 강론 제목처럼 <탐욕, 두려움의 무지에 대한 답은 하느님 중심의,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뿐입니다. 예전 하느님 사랑의 고백 시 두 편도 생각납니다.

“맑은 별빛 아니었다면

 반짝이는 내 영혼 몰랐을 것입니다

 청초한 들꽃 아니었다면

 송이송이 피어나는 내 사랑 몰랐을 것입니다

 당신 아니었더라면

 이처럼 아름다운 시詩들 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 주신 참 좋은 선물, 

 참 아름다운 선물

 내 사랑 당신이옵니다”<예수님; 1997.10.27.>

“맑은 별빛 가득한 새벽 깊은 하늘

 ‘맑고 깊음’의 내밀한 기쁨은 

 소수만이 누리는 은총

 자유로이 뻗은 나무 가지들 내밀한 기쁨을 누린다

 깨달음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

 맑은 별빛 가득한 깊은 하늘로부터

 흔적없이 살다가 

 흔적없이 사라지자

 향기처럼 살다가 향기처럼 사라지자

 내 맑은 별빛 내 깊은 하늘 

 영원한 내 사랑 당신입니다”<내 사랑 하느님; 1997.11.7.>

무려 여기 요셉 수도원에서 29년 전 49세 때 요즈음의 시들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느님은 제 운명이자 사랑이요 제 삶의 전부입니다. 존엄한 인간 품위의 기초가 하느님께 대한 신망애信望愛의 삶입니다. 다음 시편 그대로가 인간에 대한 정의입니다.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시편63,2)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시편8,6)

바로 이런 하느님을 떠나 자초한 인간의 불행이요 재앙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도저히 무지와 허무의 어둠의 심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빛이, 지혜의 빛이 무지의 어둠을, 사랑의 빛이 허무의 어둠을 밝힙니다. 인간 무지의 탐욕을 탓할 수 없으니 보편적 탐욕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탐욕에서 끊임없는 소유욕이요 탐욕의 뿌리 중심에는 두려움이 똬리 틀고 자리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전쟁도 그 뿌리에는 불신과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이 오늘 복음의 답이 됩니다. 예수님 친히 답을 주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탐욕에는 눈이 없습니다. 지옥에는 한계가 없고 한계를 모르는 끝없는 탐욕 상태가 바로 지옥입니다. 탐욕의 뿌리에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음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움 때문에 탐욕의 소유욕은 미봉책일 뿐이요, 근본적으로 두려움을 해소하기는커녕 두려움은 날로 증대됩니다. 바로 사람의 생명은 재산이 아닌 <생명의 하느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두려움의 중심 자리에 그 무슨 우상들이 아니라 <생명의 하느님>이 자리 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 삶의 중심 자리는 우상들이 아닌 하느님의 자리입니다. 이어지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무지한 인간의 보편상을 보여줍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관계가 전무한 고립단절의 자기 감옥에 갇힌 수인 같습니다. 자기도취, 자기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찬미의 하늘 사랑의 문도 없고 자선의 이웃 사랑의 문도 없습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전무한 고립단절 상태가 스스로 자초한 지옥의 심판입니다. 

하느님 탓이 아닌 순전히 무지한 내 탓입니다. 어리석은 무지한 부자의 독백과 하느님 말씀이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통절한 회개와 더불어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닫힌 문을 열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개방의 회개뿐입니다. 땅에 보물을 쌓는 자기중심의 삶에서 하늘에 보물을 쌓는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의 전환뿐입니다.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현세의 지상생활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한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이래서 <날마다 죽음을 늘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이 참 절실합니다. 어리석은 부자를 조롱하는 듯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이어지는 주님의 결론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이들을 비춰주며 회개를 촉구하는 <하느님의 거울>같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땅에 보물을 쌓는 자기중심의 이기적 삶에서, 하늘에 보물을 쌓는 하느님 중심의 이타적 아가페 사랑의 삶으로 회개의 전환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도 하느님 중심의 삶에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육과 감각을 따르는 육의 욕망의 <자기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의 정주를 명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참 통쾌합니다. 참으로 무지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지혜로운, 겸손과 감사의 삷의 비결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 지혜롭고 자비하며 겸손하고 감사하는, 참으로 내적 부요의 자유로운 삶은, 자기중심의 삶에서 벗어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삶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내면의 두려움을 말끔히 몰아내시고 하느님 중심의, 하늘에 보물을 쌓는 지혜로운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 좋으시다, 영원하신 그 사랑,

 당신의 진실하심, 세세에 미치리라.”(시편100,5).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 대표자 : 백남일 요셉 | 사업자번호 : | Tel : 02-776-3189 | Fax : 02-773-9886
주소 : 서울 중구 정동길 9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313호 | E-mail : cmsmonk@hanmail.net
Copyright © 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All Rights Reserved.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