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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신부] 26.11.02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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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11-02 10:59 조회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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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1.02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지혜4,7-15 로마6,3-9 마태25,1-13

늘 죽음을 준비하는 삶

“깨어 있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23,1)

김수환 추기경의 묘비명입니다. 11월 위령성월, 어제 첫날은 ‘모든 성인 대축일(All saints)’에 이어 둘째 날 오늘은 ‘위령의 날(All souls)’입니다. 새삼 우리의 구체적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같은 날, 어디선가는 죽고 어디선가는 태어나고 어디선가는 결혼하고, 참 다양한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 왜관수도원에서는 오후 2시, 79세 선종한 이 제랄도 수사의 장례미사가 있고 우리 형제 몇 분이 참석합니다.누구나 피할 수 없는 세월에 죽음이요 이런 자각이 삶의 제자리에 충실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어제 성 요셉 수도원에서는 39년 동안 개원이래 처음으로 수도원 성전에서 <분도마루 단풍놀이; 바이올린 유시연, 피아노 강자연, 사회 맹경순>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연주자, 반주자. 시청자 관객의 삼위일체여야 가능한 음악회임을 배웁니다. 150명 이상이 함께 雨天시라 <자캐오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한 시간 동안 저도 음악회에 참석했으니 78년 생애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입니다. 

세속화, 물신화 되어가는, 거칠고 사나워지는 광야의 일상에서, 무엇보다도 11월 위령성월에 이런 영적 초월과 흡사한 체험은 신자들에게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詩와 禮와 樂이 하나 될 때 전인적 영적 삶이겠기 때문입니다. 晩秋의 계절 모두 진지한 모습으로 황홀히 시청하는 모습도 아름다웠습니다.

언젠가 갑자기 복된 선종은 없습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순종에, 봉헌에 충실할 때 마지막 복된 순종이자 봉헌의 죽음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축제같은 복된 선종보다 이웃에게 좋고 아름다운 선물도 없을 것입니다. 예전 28년 전 50세 때, <죽음> 이란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땅위를 

 덮고 있는 

 고운 단풍잎들

 두려워하지 마라

 죽음은 

 귀환이다 

 해후다 

 화해다

 구원이다

 ‘수고하였다. 

 내 안에서 편히 쉬어라.’

 들려오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음성

 참 복된 죽음이구나”<1998.11.10.>

누구나 원하는바 복된 죽음의 선종입니다. 죽음은 삶의 요약입니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물음으로 전환됩니다. 다음 제1독서 지혜서 말씀이 우리 모두 더욱 분발하여 아름답고 향기로운, 품위 있는 영적 삶을 살게 합니다. 초점은 <얼마나 사느냐?>는 삶의 양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 삶의 질 문제임을 깨닫습니다.

“영예로운 나이는 장수로 결정되지 않고, 살아 온 햇수로 셈해지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예지가 백발이고, 티 없는 삶이 곧 원숙한 노년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께 선택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들을 돌보신다.”

바오로 사도 역시 주님과 함께 영원한 현재의 파스카의 삶을 살도록 우리를 고무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그리스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늘 새로운 시작의 파스카의 삶, 하늘나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바로 오늘 복음의 열 처녀의 하늘나라의 비유가 좋은 가르침을 줍니다. 바로 슬기로운 처녀 다섯처럼 영혼 등잔에 信望愛의 기름을 충분히 지니고 깨어 준비하며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성녀 젤투르다의 임종어이기도 합니다. 이 외침과 더불어 눈을 감으니 선종의 죽음이었습니다. 주님이신 신랑이 오실 때, 가득한 기름등잔에 등불을 켜들고 깨어 준비되어 있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입장했지만 뒤늦게 도착한 어리석은 처녀들은 입장이 좌절되고 문은 닫혔습니다. 

마치 죽음 준비처럼, 평상시 일상의 삶 중에 스스로 영혼의 기름등잔에 기름을 채웠어야했습니다. 누군가에 빌릴 수 있는 기름이 아니라 각자 삶의 제자리에서 평소 스스로 마련해야할 영혼 등잔의 신망애의 기름이었습니다. 이런 信望愛의 마음으로 평생, 매일 쓰는 강론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문은 닫혔고 어리석은 처녀들은 두드렸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이런 죽음이라면 얼마나 암담하고 허망하겠는지요! 주님으로 상징되는 주인의 지극히 냉철한 반응입니다. 위령의 날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절정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지막 최종 시험인 죽음 날짜는 아무도 모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특별히 11월 위령성월, 하루하루 날마다 깨어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주님을 맞이하는 복된 미사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하여도, 

 주님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시편23,4ㄱㄴㄷ).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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