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1.28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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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1-28 09:51 조회24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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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28.수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1225-1274)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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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뿌리는 사람
"참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말씀 묵상중 문득 떠오른,
제 작은 소망이 담긴 옛 자작글이 있어 나눕니다.
“언제나
높이보다는 깊이를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드러나기 보다는 드러나지 않음을
채움보다는 비움을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을
특별함보다는 평범함을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시끄러움보다는 고요함을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을
부수적인 것보다는 본질적인 것을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라
언제나
하느님만을 추구하라
‘오, 주님을 찾는 마음은 즐거워하여라’(시편105,3ㄴ)
‘늘 그분의 얼굴을 그리워하여라’(시편105,4ㄴ)”<2006.1. >
아마도 오늘 씨뿌리는 사람으로 표현되는 예수님의 삶이 이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참 심오합니다. 그대로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의 삶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마음을 읽습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프랑스의 작가 장 지오노가 1953년에 발표한 작은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이 생각납니다. 홀로 외롭게 끊임없이, 한결같이 나무를 심은 한 늙은 양치기의 숭고한 노력으로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황무지가 살기 좋은 낙원으로 바뀌었다는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의 씨뿌리는 사람의 삶의 자세가 참 감동적입니다. 삶의 현실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결같이, 끊임없이 말씀의 씨를, 선행의 씨를 뿌립니다. 참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궁극의 믿음을, 희망을, 사랑을 두었기에 가능한 좌절함이 없는 한결같은 노력입니다. 아마도 그는 끊임없이 한결같이 하느님을 찾으며 기도했으리라 추측됩니다.
그대로 진인사대천명의 자세입니다. 누가 뭐래도 하느님만 알아 주시면 됩니다. 때로는 말씀이나 선행의 씨앗들이 길가에, 돌밭에, 가시덤불밭에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래서 실패인 듯 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기에 결국은 성공인생이었음이 다음 대목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배의 열매를 맺었다.”
다시 한 번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자포자기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게 죄임”을 확인합니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다시 씨뿌리는 삶에 항구하자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예수님 말씀이 정신 번쩍 들게 합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
주님 말씀의 깊이를 알아 듣고 깨달아 씨뿌리는 삶에 한결같으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삶의 어느 부분만 보고 좌절하거나 절망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넓고 깊은 시야로 전체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분적으로 실패인 듯 해도 어디선가 풍요로운 결실이 있겠기에 전체적으로는 성공이요 하느님은 분명 그것을 보고 계실 것입니다.
이어지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설명은 앞서의 <씨앗>에서 초점이 <땅>으로 바뀝니다. 아무리 말씀의 씨앗들이 좋아도 내 마음밭이 길바닥 같고, 돌밭같고, 가시덤불밭같다면 수확은 거의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마음밭의 상황에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말씀 실천의 수행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보면 점차적으로 박토는 옥토로 변할 것입니다. 타고난 박토도, 옥토도 없고 방치하면 옥토도 박토가 됨은 농사의 현장에서도 겪는 일입니다. 마침내 어느 날엔가는 다음과 같은 풍요로운 수확의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배의 열매를 맺는다.”
끊임없이 가꾸고 돌보아 박토를 옥토로 만들어 풍성한 말씀의 결실을 내는 일은 영원한 현재 진행형의 평생과제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한결같이 침묵중에 끊임없이 일하시는 분이요, 이를 그대로 닮은 씨뿌리는 사람으로 대변되는 예수님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모범으로 삼아 평생 씨뿌리는 삶에 항구했던 무수한 성인들입니다.
바로 제1독서 사무엘 하권의 다윗이 그 모범입니다. 하느님이 얼마나 그와 함께 했고 그가 얼마나 하느님께 잘 협력한 삶이었는지 참 잘 들어납니다. 다윗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 했음을 하느님의 명을 받아 일깨워주는 예언자 나탄입니다. 좌우간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일상의 씨뿌리는 삶에 충실했던 다윗에게 주님의 축복을 전하는 나탄입니다.
“나는 그에게서 내 자애를 거두지 않겠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할 것이다.”
마침내 다윗의 후손 그리스도 예수님의 교회를 통해 실현되기 시작한, 계속 성장중인 하늘 나라의 왕국입니다. 다윗과 더불어 오늘 기념하는 가톨릭 교회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쌍벽을 이루는, 또 당시 프란치스코회의 세라핌 박사 성 보나벤투라 쌍벽을 이루는 도미니코 수도회 출신의 천사적, 보편적 박사라 칭하는, 대학교와 학교의 수호성인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입니다.
참으로 49세로 별세하기 까지 교회의 사람으로, 씨뿌리는 삶에 항구하여 불가사의의 눈부신 업적을 남긴 성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당대 동시대 사람들은 성인을 “수수하고 겸손하며 소박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사색에 잠기고 절제심이 강하며 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몇가지 일화도 나눕니다.
초기에 성인은 말솜씨가 좋지 않아 “벙어리 소”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그의 스승인 성 알베르토는 “나는 그가 장차 교리에 대해 온 세상에 울려 퍼질 만큼 큰 소리로 포효할 것이라 장담한다”며 그를 두둔했고 그대로 실현됩니다. 1273년 세상 떠나기전 해에는 신비체험후 고백하여 일체의 집필을 멈춥니다.
“내게 밝혀진 비밀들 때문에 내가 쓴 모든 글은 이제 허무맹랑한 지푸라기처럼 보인다.”
또 임종전 십자가의 주님과 나눴다는 대화도 생각납니다. “너는 나에 대해 참 잘 가르쳤다. 뭐를 해주면 좋겠니?” 주님의 물음에 “주님, 당신 외에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 당신 하나만으로!” 충분하다는 답변이 성인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성인의 마지막 유언이자 임종어도 성인답습니다.
“내 벗인 죽음이여, 어서 오게나...기다리고 있었네.”
성 프란치스코의 임종어를 연상하게 합니다.
“나의 누이 죽음이여, 어서 오십시오!”
최선을 다한 삶이었기에 이런 죽음과의 평화로운 해후요, 동시에 한편 성인들의 지상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알게 해줍니다. 죽어서야 비로소 주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된 성인들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씨뿌리는 신망애(信望愛)의 삶’에 항구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제자 요한에게 준 삶의 지침
1.대담하게 즉시 바다로 나가려들지 말고, 오히려 실개천을 통해 이르려 노력하라.
2.더디 말하기 바라고, 저녁 늦게 대화방 같은 데를 드나들지 마라.
3.양심의 순수성을 언제나 소중히 여기라.
4.기도에 중단없이 전념하라.
5,지혜의 향연에 참석하고 싶거든, 독서실에 수집되어 있는 것들을 사랑하라.
6.모든 이에게 상냥하게 대하라.
7.남들의 일에는 깊이 끼어들지 마라.
8.그 누구와의 친밀관께도 맺지 말지니, 그것은 경멸을 낳기 쉽고, 또 연구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9.결코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그런 담화에 끼어들지 마라.
10.무엇보다 일없이 배회하지 마라.
11.성인들과 훌륭한 사람들의 모범을 본받는 일을 건너뛰지 마라.
12.말하는 이다 누구든 개의치 말고, 들은 바 좋은 내용을 마음 속에 새겨 두어라.
13.읽고 듣는 내용을 이해하도록 하라.
14.의심스러운 일들에 대해서는 확실히 해두어라.
15.그릇을 채우듯 정신의 서가에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정리해 두어라.
16.네 힘에 겨운 문제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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