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10.08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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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10-08 11:39 조회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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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8.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갈라 3,1-5 루카 11,5-13
영적 탄력
<기도와 믿음, 삶의 자세>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이는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사전에 없는 단어가 절망이고 절망이 진짜 대죄입니다. 제가 수도생활 초기부터 늘 형제자매들에게 피정 시 강조하는 말마디가 있습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이렇게 사는 것이 믿는 이들의 삶이다. 이것인 진짜 <주님의 전사들>의 진면목이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자포자기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 대죄다. 넘어지면 즉시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파스카의 삶이다.
이래야 영적탄력, 영적감성의 손상을 막을 수 있다. 정말 하느님의 사랑이 지칠 줄 모르는, 절망할 주 모르는 삶의 원동력이다.”
제가 불암산 기슭 천장암(天藏庵;하늘이 감춰둔 암자) 같은 요셉수도원에 정주하기 39년 동안 자랑스러운 것은 한 번도 <절망, 원망, 실망>의 삼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정말 슬프게 하는 것이 절망입니다. 때로 답답하고 암담해하기는 했어도 삼망에 빠진 적은 결코 없었고 이럴 때 마다 하느님을 찾듯, 하느님을 바라보듯 <하늘과 불암산>을 바라봤습니다. 아마도 저만큼 하늘과 산을 많이 바라본 사람도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습관입니다. 초창기 세 편의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하나가 山이다. 겸손히 조심스럽게 오르내리는 山이다. 오르내릴수록 깊어지고 새로워지고 정다워지는 우정의 山이다” <사람은 山이다; 1998.11.29.>
이렇게 존중과 배려로 이웃을 대하는 예의가 참으로 절실한 시절입니다. 많은 이들이 여유를 잃고 거칠고 사납고 무례하고 불손합니다. 이어지는 두 편의 자작시입니다.
“죄에 걱정하지 마셔요. 사랑에 전념하셔요. 사랑이 되셔요. 사랑만이 죄를 씻어 준답니다. 죄를 없애 준답니다. ”<죄에 걱정 마셔요; 1998.11.29.>
“죄를 통해 나의 교만을 꺾어 겸손하게 만드셨다. 어쩔 수 없이 죄를 은총의 도구로 쓰신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끝없는 지혜와 자비여! <은총; 1998.12.1.>
모두가 같은 시기의 글들을 28년 후 강론에 인용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지요! 결론은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입니다. 그러니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로 늘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불퇴전의 용맹한 하느님의 영적 전사가 예수님이요 바오로 사도입니다. 예수님의 다음 복음 말씀은 참으로 통쾌하고 바람직한 기도와 믿음, 삶의 자세를 가르쳐줍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삶은 낭만도 감상도 아닙니다. 물러설 줄, 지칠 줄 모르는 아주 집요하고 절박한 삶의 자세를 지니자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말마디가 중요합니다. 예외 없이, 차별 없이 주님은 포기할 줄 모르는, 지칠 줄 모르는 백절불굴의 절박한 이들에게 반드시 어떤 형태로는 응답해 주십니다. 참으로 영적탄력 좋은 기도와 믿음, 삶의 자세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마침내 무엇보다 주님이 주시는 참 좋은 최고의 선물인 성령이 선사됩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정말 지혜로운 자라면 성령 하나만 청할 것입니다. 성령을 받을 때 모두인 주님을 선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성령이, 진리의 성령이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부요하게, 행복하게 합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예수님에 이어 제1독서 갈라디아서의 사도 바오로입니다. 갈라티아 사람들을 꾸짖는 바오로의 말씀이 우리에게도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아, 어리석은 갈라티아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으로 마칠 셈입니까?”
이미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선사되는 무상의 선물이 성령입니다. 진리의 성령, 사랑의 성령입니다. 성령에 따를 때 주님의 뜻에 따른 삶이요, 성령의 힘이 백절불굴 탄력 좋은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성령에 따른 성령충만한 삶이 천하무적의 주님의 전사로, 내적으로 부요하고 행복한 대자유인으로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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