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7.24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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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7-24 08:57 조회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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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24.연중 제16주간 금요일
예레 3,14-17 마태 13,18-23
어떻게 ‘좋은 마음 밭’을 만들 것인가?
“희망, 훈련, 습관”
“목자가 양떼를 돌보듯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예레31,10ㄹ)
오늘 화답송 후렴처럼 착한목자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희망입니다. 참 중요한 덕목이, 하느님 주신 최고의 명약이 희망입니다. 희망에서 기쁨도 샘솟고 끝까지 견뎌내고 버텨낼 수 있는 인내의 힘도 나옵니다. 어제의 상쾌했던 기억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생전 처음, 원장수사의 배려로 고백상담실이자 제 집무실의 문을 육중한 검은색의 방음문으로 바꿨습니다. 완벽한 방음은 되겠지만 집무실을 찾는 신자들에게 위압감을 줄 듯싶어 고민하던 중 마침내 방법을 찾았고 참 마음에 들었고 기뻤습니다.
“예, 여기 있습니다. 언제나 무조건 녹크 하세요!”
육중한 검은색 바탕에 선명한 글씨로 써 붙여 놓으니 마음이 참 상쾌했습니다. 그대로 우리를 기다리는 친절하고 겸손한 <희망의 주님>의 말씀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부재중, 연락처 010-9380-8115, 이프란치스코 신부”
집무실에 없을 경우는 위 표지 글자를 문 앞에 친절히 걸어두기로 했습니다. 두 경우 모두 희망의 상징이자 수도원 로고인 <하늘과 산>의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사소한 행위 같지만 주님의 마음에 들었으리라 생각되니 마음도 나를 듯 가벼웠습니다. 자주 고백성사시 드리는 말씀처방전 성구도 생각났습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하느님께 두어라.”<시편131,3>
더불어 생각난, 자주 인용한 <제비꽃>이란 하늘 희망을 노래한 오래 전 자작시였습니다. 시는 <짓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간절히 찾을 때 은총처럼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 같은 선물>입니다.
“자리 탓하지 말자
그 어디든 뿌리내리면 거기가 자리다
하늘만 볼 수 있으면 된다
회색빛 죽음의 벽돌들
그 좁은 틈바구니 집요히 뿌리내린
연보랏빛 제비꽃들!
눈물겹도록 고맙다
죽음보다 강한 생명이구나
절망은 없다”<2001.4.18.>
주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우리의 평화입니다. 아니 주님은 우리의 모두입니다. 이를 노래한 행복 기도 중 <사랑의 고백>입니다. 참 많은 분들과 나눈 자작 기도문입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평화,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2018.10.16.>
바로 이런 희망의 착한목자 주님을 예고하는 예레미야 예언자입니다. 도시가 파괴되고 바빌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암울한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이들 백성들에게 회개와 더불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사기를 북돋아 줍니다.
“배반한 자식들아, 돌아오너라. 내가 너희의 주인이다.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너희를 지식과 슬기로 돌볼 것이다. 너희가 그날 그 땅에서 불어나고 번성하게 될 때, 더 이상 주님의 계약 궤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예루살렘을 주님의 옥좌라 부를 것이고, 더 이상 자신들의 악한 마음을 고집스럽게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날, 그때 그 땅이 바로 오늘 지금 여기입니다. 목자중의 목자, 착한목자 희망의 예수님을 통해 예레미야 예언이 실현되기 시작한 고무적인 바로 오늘 지금 여기가 <주님의 옥좌> 예루살렘입니다. 희망의 예언자 예레미야에 이어 희망의 목자 예수님이 우리에게 희망을 북돋아 줍니다. 이런 샘솟는 희망의 씨 뿌리는 사람으로 살 때 결코 절망은 없습니다. 하느님 사전에 없는 <절망>이란 말마디입니다.
결코 좌절하거나 일희일비함이 없이, 한결같이 끊임없이 희망의 수행자 되어 주님 탓, 말씀 탓, 자리 탓, 환경 탓하지 않고 사랑의 수행에 항구합니다. 하느님 꿈을, 희망을 잃어버릴 때 끊임없이 샘솟는 남 탓입니다. 그러나 지혜롭고 착한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고 나의 희망부족을, 노력부족을 탓합니다. 막연한 수행이 아니라 수도자처럼 주님께 희망을 두고 제 나름대로 <기도하고 공부하고 일하고 운동하고> 일과표에 따른 균형과 조화가 잡힌 수행에 항구하고 충실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진인사대천명의 믿음의 자세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습니다. 이렇게 사랑의 수행에, 훈련에 항구하여 습관화 할 때 모든 난관도 점차 저절로 해결됩니다. 마침내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중 앞서 부정적 세 유형의 삶은 네 번째 유형으로 변모됩니다.
결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한 <길바닥> 같은 유형, 뿌리가 없어 오래가지 못하고 말씀으로 인한 환난이나 박해에 곧장 무너지는 돌밭 같은 유형,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덤불 밭같은 유형에 오래 머물지 않고 네 번째 유형을 살게 됩니다. 이런 이야말로 인간승리, 하느님의 승리의 생생한 증언자입니다.
말씀은 주님의 현존입니다. 착한목자 주님은 말씀자체입니다. 이런 주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은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함이 없이 사랑의 수행에 항구합니다. 마침내 좋은 땅, 마음 밭으로 변모되어 마지막 네 유형의 성공적 인생이 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런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마태13,23)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우심을 빌며
당신의 말씀에 희망을 거나이다.”(시편119,1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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