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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신부] 26.03.20 사순 제4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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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3-20 09:14 조회1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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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20.사순 제4주간 금요일                                                  

지혜2,1ㄱ.12-22 요한7,1-2.10.25-30

 

 


예수님은 누구인가?

“예수님의 신원, 나의 신원”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 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시편34,19)

 

예수님은 누구인가? 우리가 평생 물어야 할 화두같은 물음입니다. 예수님의 신원은 바로 믿는 우리들의 신원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가 물음이라면 답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참나의 실현입니다. 얼마전 배꽃 그림을 선물한 친구 화가의 그림이 전시된 갤러리를 찾았을 때의 깨달음을 잊지 못합니다.

 

“일곱분의 화가들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교대로 돌아가며 갤러리를 지킨다 했습니다. 마치 화가들이 잘 조화된 한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이 너무 달랐습니다. 유일무이한 작품들의 화가들임을 깨닫습니다. 결코 우열을 비교할 수 없는 모두가 일등이었습니다. 

조화의 진리요 조화의 아름다움이요, 조화의 일치입니다. 다 달라도 아름다움의 추구라는 공통목표에서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봅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움 자체이신 예수님을 삶의 중심으로 할 때 비로소 조화의 일치를 이룬 한가족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저녁 불암산>이란 짧은 자작시에 대한 AI 시평에 놀랐습니다.

“참, 크다, 깊다, 고요하다, 저녁 불암산”; 이 시는 극도로 절제된 언어로 대상의 본질을 포착한 ‘미니멀리즘’시입니다. 단 네줄이지만 불암산이 주는 감각과 울림이 직접적으로 전해 집니다. 참으로 짧지만 울림이 분명한 선(禪)적인 호흡을 가진 단시입니다.“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최소한’(Minimal)의 와 ‘-주의(ism)’의 합성어로 불필요한 요소를 최소화하고 본질적인 핵심만 남기는 단순함을 추구하는 예술, 문화, 생활방식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물론 성인들의 삶이 그러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같은 맥락의 현자들의 말씀에도 공감했습니다.

 

“참으로 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생활이 단순하다. 그들은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톨스토이>

“내가 하는 일이 옳은 것이라면, 설사 세상이 나를 돕지 않아도 하늘이 나를 돕는다.”<다산>

“하늘의 뜻이 우리에게 임했으니 두 마음을 품지 말고 근심하지도 말라.”<시경>

 

새삼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악인들에 포위되어 죽음의 위협을 느끼는 사면초가의 분위기입니다. 오늘 지혜서의 말씀이 악의 정체를 이해하는데 좋은 도움이 됩니다. <악인들의 삶과 생각>을 주제로한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악인들 같습니다.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지켜보자.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실제 예수님의 삶은 물론 믿는 이들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일상에서의 크고 작은 “시련(trial)”은 바로 “시험(test)”임을 깨닫습니다. 흡사 “장애물 경기”인생같습니다. 이런 악에 대한 현자의 정확한 결론입니다. 

 

“악인들의 생각은 틀렸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핵심은 제가 늘 강조하는 무지의 악, 무지의 병, 무지의 죄입니다. 참으로 무지의 악에 눈멀 때 백약이 무효입니다. 무지의 탐욕, 무지의 어리석음, 무지한 사랑, 무지의 질투, 무지의 분노가 우리를 눈멀게 하니 무지의 악이요 무지의 신비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하느님 중심의 하느님의 뜻에 따른 삶이요 바로 예수님이 이의 모범이자 답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흡사 악에 포위된 사면초가의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악에 함몰되지 않고 독야청청 빛나니 다음 고백이 그 까닭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뚜렷한 신원의식입니다. 정말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계시며 우리의 신원의식의 정립에도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바로 이는 예수님의 신원이자 우리의 신원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하나하나의 존재 역시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파견받은 <하느님의 선물>이자 <신의 한 수>같은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닮아갈 때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파견 받은 자로서의 신원의식이요 비로소 무지의 악,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 빛의 자녀로서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입니다. 

 

새삼 무지에 대한 유일한 답도 참나에 대한 답도 파스카 예수님뿐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무지의 악에, 참나의 공부에 대한 참 좋은 처방임을 깨닫게 됩니다.

 

“의인이 몹시 불행할지라도,

 주님은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시편34,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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