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3.04 사순 제2주간 수요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3-04 08:59 조회177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2026.3.4.사순 제2주간 수요일
예레 18,18-20 마태 20,17-28
어떻게 살아야 하나?
“섬김과 배움, 나눔과 비움”
“의인에게는 빛이 솟아 흐르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솟나이다.”(시편97,11)
격변의 세상입니다. 아무도 예측하거나 예단할 수 없는 세계 현실입니다. 작건 크건 공동체 지도자의 역할이 참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이요 전쟁 4년 째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무려 180만명이 전쟁으로 죽었다 합니다. 또 중동에서도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한창입니다.
“지옥문 열릴 것. 이란 혁명수비대 보복 반격, 자폭드론 무차별 공습, 중동 화염”, 뉴스 옆에는 “국빈 맞이하는 엄청난 스케일에 깜짝, 이대통령 ‘한-필리핀, 원전-핵심광물 등 신성장분야 협력 확대”, 너무 극과극의 대조적인 뉴스가 시사하는바 큽니다.
이어지는 뉴스, ‘알아서 가라’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정부가 대피 지원, 이란 교민, 제3국으로 안전하게 이동” 참으로 이런 위기시 국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이런 세계내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물음은 간절할 수 뿐이 없습니다. 교황청 홈페이지 두 추기경의 언급도 마음에 와닿습니다.
“하느님, 무기들은 침묵하게 하시고 사람들을 화해하게 하소서.”
“전쟁의 시대, 크리스천들은 ‘희망의 사람들’(people of hope)로 불림 받고 있다.”
사순시기뿐 아니라 언제나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 평화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되어 살라고 불림 받은 크리스천들임을 깨닫습니다.
예나 이제나 묻게되는 한결같은 질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오늘 하느님의 사람 예수님과 예례미야가 그 좋은 삶의 모범이 됩니다. 예수님과 이분의 예표와 같은 예레미야 두 분은 우리 믿는 이들이 평생 보고 배워야 할 분들이요, 특히 주님이자 스승이신 예수님은 우리 삶의 영원한 롤모델입니다.
참 중요한 평생공부가 참사람이 되는 공부요, 예수님을 닮아갈 때 비로소 참사람의 실현이겠습니다. 세상사, 인간사 모든 불행 배후에는 인간의 치명적 무지의 악이, 무지의 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오늘 네 번째 고백도 이를 반영합니다.
“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그들은 제 목숨을 노리며 구덩이를 파놓았습니다.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하느님의 현존을 의심하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원인 해명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궁극의 희망을 하느님께 두고 기도하는 것이요,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우리가 할 현명한 대책과 대비에 최선을 다하는 진인사대천명,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의 지혜로운 삶이겠습니다.
예레미야나 예수님의 몰이해의 처지가 흡사합니다. 예나 이제나 변함없는 인간 무지의 현실입니다. 예레미야를 박해하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무지의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는 제자들 역시 무지한 철부지들임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좌절과 실망도 컸을 것이나 예수님은 요지부동 흔들리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며 이들을 평화의 길로 이끕니다.
예레미야의 네 번째 고백과 대조적으로 예수님의 마지막 세 번째 수난과 부활이 예고되는 엄중한 상황에서 동상이몽의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와 그 아들들의 청입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스승님의 양쪽에 앉게 해 달라는 참 무지한 청이나 예수님은 침착하게 대응하십니다. 다음 물음은 오늘 우리에 대한 주님의 물음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
물으신 다음, 당신 곁의 자리는 당신 아버지의 뜻에 달렸다 하시며, 또 이들과 이들의 청을 몹시 불쾌해 하는 제자들 일행에도 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여기 나머지 제자들의 속내도 환히 드러나니 그대로 탐욕과 질투심의 발로이겠습니다.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는 세상 지도자들을 예로 들면서 전개되는 다음 주님의 단호한 말씀이 오늘 복음의 핵심이자 절정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섬김의 영성>이 되풀이 강조됩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섬김과 비움의 여정>에 시종여일 충실하셨던 우리 삶의 영원한 롤모델 주님이십니다. <종과 섬김의 영성>의 모범을 몸소 보여 주신 주 예수님입니다. 섬김의 사랑, 섬김의 권위, 섬김의 리더십이요, 직무가 있다면 섬김의 직무 하나뿐입니다. 섬김의 영성을 고스란히 전수받은, 극단이 아니 평화와 중용의 인물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인 학원을 설립해야 하겠다. 우리는 이것을 설립하는 데 거칠고 힘든 것은 아무것도 제정하기를 원치 않는 바이다. 그러나 결점을 고치거나 애덕을 보존하기 위하여 공정한 이치에 맞게 다소 엄격한 점이 있더라도, 즉시 놀래어 좁게 시작하기 시작하기 마련인 <구원의 길>에서 도피하지 마라.”(성규;머리46-48)
사부 성 베네딕도의 주님 뜻을 받들어 <주님을 섬기는 평생 배움터> 세상에서 주님을 닮아 섬김과 배움, 나눔과 비움의 여정에 충실함이 구원의 첩경이자 참나의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혐오와 증오, 차별과 배척의 시대에 <공존공생의 섬김과 배움, 나눔과 비움의 삶>은 시대의 표징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 세상에서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빛의 사람으로, 주님의 자녀로 살게 하십니다.
“나는 주님의 집에서 푸르른 올리브같이,
언제까지나 주님의 자비에 의탁하리라."(시편52,10).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수도회와사도생활단 > 오늘의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