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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신부] 26.2.20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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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2-20 09:03 조회2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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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2.20.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이사58,1-9ㄴ 마태9,14-15

        

 

하느님께서 좋아하는

“참된 단식”

 

 

“너희는 악이 아니라 선을 찾아라. 

 그래야 살리라. 주님이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아모5,14)

 

오늘은 단식이 주제입니다. 하느님께서 좋아하는 참된 단식입니다. 단식해서 구원이 아니라 사랑해서 구원입니다. 절대적 법인 사랑은 판단의 잣대가 되지만 단식은 판단의 잣대가 되지 못합니다. 단식은 상대적 가치만 지닐뿐입니다.  무조건 단식이 아니라 분별에 따른 단식이, 교회에서 정한 때의 단식이 바람직합니다. 

 

옛 사막교부들은 엄중한 단식의 때에도 방문한 손님의 환대의 사랑때문에 단식도 해제했습니다. 사람이 있고 단식이지 단식있고 사람이 아닙니다. 영양 과잉의 배부른 사람은 배고픈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데 단식은 꼭 필요하지만 굶주린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옛 장상의 덕담도 잊지 못합니다.

 

“먹고 겸손한 것이 안먹고 교만한 것보다 낫다.”

 

자기 과시의 이기적 교만한 단식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자발적, 겸손한 단식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식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이런 자기 과시의 허영과 교만의 위선적 단식을 거부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올바른 단식에 대한 가르침에서 위선자들처럼 그렇게 드러나는 단식은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는 단식의 회수가 아니라 시의적절한, 분별의 지혜에 따른 단식이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의 단식에 대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은 명품 답변입니다.

 

“혼인잔치 손님들이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시도 때도 없는 무절제한 단식이 아니라, 단식의 때에 단식하라는 것입니다. 분별의 지혜에 따른 겸손한 단식입니다. 이런 단식의 때 말고는 주님과 함께 축제인생을 즐기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지낼 축제인생을 분별의 지혜 결핍으로 어리석게 고해인생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못먹어서 병이 아니라, 많이 잘 먹어서 병도 많은 세상에서는 정말 분별의 지혜에 따른 올바른 자발적 단식이 참 필요하다 싶습니다. 성 베네딕도는 단식을 사랑하라 했습니다. 정말 단식을 사랑할 때 단식은 자발적 사랑의 수행이 될 것입니다. 

 

어제의 순간적 체험에 참 행복했습니다. 문득 ‘하느님만으로 맛있다, 배부르다,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전 공기 맑은 날, 심호흡을 하면서 느꼈던 ‘신선하고 향그러운 공기에 맛있다, 배부르다, 행복하다.’는 느낌과 흡사했습니다. 정말 하느님만으로 배부르다면, 하느님 사랑으로 꽉 차있다면, 자발적 사랑의 단식도 영성생활에 참 좋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식을 사랑하듯 모든 수행을 사랑하여 내면화한다면 이보다 더 멋지고 바람직한 수행자도 없을 것입니다. 단식을 ‘사랑하라(to love; amare)’에 이어 성 베네딕도는 넷을 더합니다.

 

1.많이 말하기를 사랑하지 마라.

2.많은 웃음이나 지나친 웃음을 사랑하지 마라.

3.순결을 사랑하라.

4.다투기를 사랑하지 마라.

 

정말 하느님께서 좋아하는 참된 단식이 되려면 이웃 사랑에 활짝 열린 단식이 되어야 함을 이사야 예언자가 잘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도 이와 일치할 것입니다. 단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웃에 대한 연민의 사랑, 위로와 기쁨, 치유를 주는 사랑입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이사야 예언자 말씀을 통해 하느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수천년전 가르침이 오늘의 문명의 야만시대에도 그대로 통하니 참 놀랍습니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인간의 부정적 이기적 본질 같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1.불의한 결박을 풀러주고 멍에 줄을 끊어주는 것.

2,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

3.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4.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5.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6.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새삼 이기적 자기만족, 자기도취의 단식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곤궁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 활짝 열린, 구체적 사랑 실천을 통해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사랑의 실천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의 응답이 참 반갑습니다.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너를 지켜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분별의 지혜에 따른 자발적 사랑의 수행의 올바른 단식에 이어, 이런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면 하느님의 축복에, 하느님 마음에 드는 최고의 수행자일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런 참된 수행자로 살게 해 주십니다.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시편25,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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