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7.14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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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7-14 09:30 조회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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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14.연중 제15주간 화요일 이사 7,1-9 마태 11,20-24
회개와 믿음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이다”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마라.”(시편95,7ㄷ-8ㄴ)
오늘 역시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옛 현자의 가르침이 참 반갑습니다
“주변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백성을 다스릴 지혜도 얻는다.”<다산>
‘섭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뻐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논어>
참 기막힌 지혜입니다. 답은,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천리향처럼 말없이 퍼져나갑니다. 지금 여기 수도공동체 형제들이 기쁘게 살면 손님들도 줄을 잇고 성소자 역시 계속 찾아올 것입니다. 교황청 홈페이지를 여는 순간 반가운 말마디가 첫눈에 들어왔습니다.
“교황은 언제나 목자로서 말한다”
(The Pope always speak as a Shepherd)
참 반가운 말마디가 목자입니다. pope(교황)과 hope(희망), 영어가 비슷한 느낌으로 와 닿습니다. 모두에게 희망hope을 주는 교황pope이라면 참 멋진 목자 교황일 것입니다. 교황이 전쟁과 평화, 이민 또는 AI시대 인간으로 머무는 방법에 대해 말할지라도, 결국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은 <영적지도자>로 머뭅니다. 그는 국가의 수반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복음을 선포할 뿐입니다. 요지의 칼럼이었습니다. 참 목자, 영적지도자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공동체의 지도자는 합창 시 지휘자와 같고 수많은 사람을 지휘해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과 같고, 수많은 인부를 통솔하여 건축하는 건축책임자와 같습니다. 독창을 잘해서 지도자가 아니라 합창을 잘 지도해야 공동체의 지도자입니다. 이를 일컬어 <섬김의 리더십>이라 부릅니다. 요즘 절실히 깨달아 배우는 진리입니다.
오랫동안 은수자이자 신비가 성향의 제 <독창시대>에서 후임 원장들의 <합창시대> 공동체가 도래한 듯합니다. 독창과 합창이 어울리면 공동체는 더욱 풍부하고 부요해질 것입니다. 독창하듯 날마다 깨어 일어나 기도하는 마음, 배우는 마음, 회개하는 마음으로 쓰는 강론입니다.
그러나 최고의 합창지도자는 하느님이요, 은수자든 회수도자든 참으로 하느님을 닮아갈수록 참 좋은 공동체 합창지도자가, 목자가, 영적지도자가 되리라 믿습니다. 어찌 보면 은수자와 회수도자는 별개가 아닌 한 실재의 양면일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안으로는, 밤에는 은수자로, 마리아로, 밖으로는, 낮에는 회수도자로, 마르타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러하셨습니다.
눈만 열리면, 믿음의 눈, 영의 눈만 열리면 배울 것은 차고 넘칩니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회개의 표징들입니다. 끊임없는 회개와 배움이 사람을 겸손하고 지혜롭게 만들며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회개와 함께 가는 믿음이요 이런 회개야 말로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입니다. 옛 자작시집을 펴는 순간 바로 <가만히 뒤돌아보니>라는 시를 발견했던 날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습니다. 마음이 열렸을 때 은총처럼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시입니다.
“아침 산책길
온몸 기쁨 샘솟아
가만히 뒤돌아보니 위 하늘에서
환히 웃는 태양
축복의 햇살
가득 내리 쏟고 있었다”<2006. 7, >
이때의 신선하고 놀라운 깨달음의 추억이, 하느님 신비체험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런 하느님을 상징하는 태양 또한 빛나는 회개의 표징입니다. 이런 회개와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대부분의 무지와 재앙은 하느님을 떠남에서 기인합니다. 오늘 복음은 세 고을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우며 회개를 촉구하는 주님의 불행선언입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여기에 <카파르나움>이 추가됩니다. 도대체 여기 세 고을에 해당되지 않을 도시가 몇이나 될 런지요? 주님의 사랑의 기적이 의도하는바 회개이지만 회개로 응답하지 못하는 무지한 이들에 대해 주님은 불행을 선언합니다. 회개와 더불어 믿음이요, 믿음이 허약할 때 두려움은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에서 아람의 진주 소식(BC734)에 숲의 나무들이 바람 앞에 떨 듯 두려움에 떠는 남 유다의 아하즈 임금과 배성의 마음이 바로 그러합니다. 주님께 파견 받은 이사야 예언자의 격려 메시지입니다. 그대로 믿음 부족으로 두려움에 떠는 우리를 향한 회개의 촉구와 더불어 위로와 격려 말씀처럼 들립니다.
“진정하고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르친과 아람, 그리고 르말야의 아들이 격분을 터뜨린다 하여도 이 둘은 타고 남아 연기만 나는 장작 끄트머리에 지나지 않는다. 네 마음이 약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무지의 두려움에 눈먼 아하즈에게 주는 이사야를 통한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요셉 수도원 십자로 예수 부활상 아래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바위판 글자에 새겨진 주님 말씀도 생각납니다. 이어지는 결론 같은 말씀이 더욱 우리를 고무합니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Unless your faith is firm, you shall not be firm)
“믿다”와 “서있다”는 한 어근에서 파생한 두 가지 변화형으로 이 어근은 <견고하다>, <확고하다>의 뜻도 지니고 있으며 <아멘>도 같은 어근에서 나옵니다. 예언자는 일종의 언어유희로 신앙의 깊은 뜻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를 우리말 번역에서 만족하게 표현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예나 이제나 반복되는 죄의 악순환입니다. 정말 회개가, 생태적 회개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무지의 탐욕에서 편리추구의 삶에서 쓰레기를 양산하는 소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회개와 더불어 믿음의 은총입니다. 믿음의 빛이 무지의 어둠을,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도 회개와 믿음뿐입니다. 눈만 열리면 도처에서 발견되는 회개의 표징들이요 겸손한 배움이 뒤 따르고 우리의 믿음도, 섬김의 자세도 더욱 견고해집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회개와 더불어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도와주십니다. 바로 주님의 미사전례은총이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이 됩니다.
“주님을 길이길이 의지하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바위이시다.”(이사26,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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