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7.13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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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7-13 08:46 조회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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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13.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이사 1,10-17 마태 10,34-11,1
참 제자들의 삶
“참 평화, 사랑, 십자가, 환대”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당신 영광 드러날 때 흡족하오리라.”(시편17,15)
연중 제15주간 입당송 시편이 좋습니다. 예나 이제나 공통적 물음은 하나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특히 주님을 믿는 제자들인 우리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라, 믿으라하지 않고 나를 따르라 했습니다. 우리 삶의 목표이자 방향인 주님을 진실히 충실히 따르다 보면 저절로 주님을 사랑하고 믿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희망이자 길이요 목표입니다. 궁극의 희망이자 길이요 목표이신, 우리 삶의 방향이신 주님을 잃을 때 혼란이요 방황이요 타락이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죄와 병입니다. 그러니 한결같이 섬기고 따르고 배워야 할 주님입니다. 연중 제15주간 본기도가 좋은 삶의 지침이 됩니다.
“하느님, 길 잃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시어.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니,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가, 그 믿음에 어긋나는 것을 버리고 올바로 살아가게 하소서.”
옛 현자의 말씀도 삶의 좋은 지침이 됩니다.
“조그만 구멍 하나만 뚫렸어도 깨진 항아리가 된다. 큰 예의는 작은 예의를 지키는 데서 완성된다.”<다산>
“남의 오래된 잘못을 말하지 말고, 깔보는 표정을 보여서도 안 된다. 갑작스레 방문도 하지 말아야 하며, 갑작스레 떠나서도 안 된다.”<예기>
생각 없이, 자기 좋을 대로 즉흥적인 언행이 아닌 이웃에 대한 배려에 지극히 신중하고 섬세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의 자녀다운, 주님의 참 제자다운 삶이겠는지요? 평생학인으로 늘 배움의 노력을 다하면서 늘 초보자의 겸손으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주님은 그 좋은 가르침을 주십니다.
첫째, 참 평화의 삶입니다.
값싼 평화는 없습니다. 참 평화를 위한 지난한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평화학>이란 과목도 있듯이 참 평화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복음 서두 말씀은 예언자로서 예수님의 면목이 약여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충격적 놀라움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복음 소주제는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합니다. 평지풍파와 같은 우리의 무사안일을 깨우는 천둥같은 말씀입니다. 예언자 예수님뿐 아니라 예언자들은 모두가 가르는 주님의 칼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예수님은 물론 예언자들의 임재는 빛과 어둠, 진리와 거짓, 선과 악,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가르는 칼이었습니다. 참 평화에 이르기 위한 잠정적 창조적 분열이지 궁극의 모습은 아닙니다.
값싼 평화는 없습니다. 성 베네딕도 역시 “거짓 평화를 주지 마라”(성규4,25)당부 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칼처럼 타성에 무뎌진 우리의 무사안일을 깨웁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경청의 강조에 이어 삶이 빠진 타성에 젖은 익숙된 관행을 질타하십니다.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나는 싫다.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나는 견딜 수가 없다.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지쳤다.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하느님의 솔직한 심정이 예언자 이사야의 칼같은 말씀을 통해 적나라하게 들어납니다. 정의와 공정의 삶이 실종된 전례주의에 대한 공격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의 실천이 하느님의 원하시는 참 평화의 길입니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참 평화를 추구하는 주님의 참 제자들인 우리에게 주어지는 참 평화에 이르는 평생과제입니다.
둘째, 주님께 대한 우선적 사랑의 삶입니다.
가정의 식구 그 누구도 주님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하십니다.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자 생명이자 진리이신 주님 당신을 우선적으로 사랑하라 하십니다. 사랑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합니다. 성 베네딕도 역시 누누이 강조하는 바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앞세우지 마라”는 가르침입니다. 주님을 사랑할 때 <하늘 빛 담아> 맑고 깨끗한 영혼입니다.
“높아서
맑고 깨끗한 하늘
낮아도
맑고 깨끗한 야생화 들꽃들
하늘 빛 담아”<2008.7. >
무질서한 이기적 사랑의 질서를 잡아 주는 주님 사랑입니다. <눈멀게> 하는 무지한 집착의 가족사랑이 아닌 <눈밝게> 하는 초연한 이탈의 주님 사랑입니다. 이렇게 주님 사랑을 첫 자리에 놓을 때 가족에 대한 순수한 사랑, 자유롭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도 가능합니다. 이때 사랑과 진리는 하나가 됩니다.
셋째, 끝까지 항구히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못 박듯이 말씀하십니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는 합당하지 않다.” 바로 주님 향한 일편단심의 한결같은 사랑의 표현이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일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도 타인의 십자가도 아닌 내 고유의 십자가입니다. 주님 사랑의 힘이 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제 십자가는 짐이 아닌 선물이 됩니다.
내 십자가의 짐을 덜어 가볍게 해달라 기도할 것이 아니라 끝까지 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내적힘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대한 신망애의 삶은 애매하지도 추상적이지도 않습니다. 자발적 사랑의 기쁨으로 묵묵히 제 책임의 십자가, 제 운명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을 통해 입증되는 주님의 참 제자로서 주님 향한 신망애의 참삶입니다.
넷째, 주님은 물론 이웃에 대한 환대의 삶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환대의 사랑입니다. 주님의 참 제자의 진정성을 입증히고 보장하는 환대입니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너희가 지칭하는 바 주님의 제자들은 물론 널리 보면 종파를 초월한 인류 모든 가족을 포함합니다. 하나하나의 배경이 되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자 하느님이심을 깨닫는, 존엄한 인간품위를 확인시키는 환대입니다.
베네디도 성인도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하라 하십니다. 수도원의 정주영성은 환대영성이 되고 수도원의 환대의 집, 수도자는 환대의 사람이 됩니다. 환대를 통한 복음 선포의 선교의 장이 되는 수도원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환대의 당부가 참 간절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이 작은 이들이 함축하는바 참 깊고 넓습니다. 신자들은 물론 곤궁 중에 있는 모든 빈곤한 이들이 포함됩니다. 그러니 차별 없이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 환대의 사랑이야말로 하느님의 온 인류에 대한 사랑을 반영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이런 자비의 하느님을 날로 닮아갈 때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 주님의 참 제자다운 삶이겠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닮의 여정>에, 주님의 제자로서 <예닮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이 나를 공경하리니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시편50,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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