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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신부] 26.07.09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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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7-09 09:04 조회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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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9.연중 제14주간 목요일                                                                       

호세 11,1-4..8ㅁ-9 마태 10,7-15

 


하늘나라 꿈의 실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1,15)

 

오늘 복음 환호송이 오늘 복음을 요약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늘나라는 예수님은 물론 제자들의 궁극의 꿈이자 희망이요 비전이었습니다. 아니 예수님 자체가 제자들이 하늘 나라 꿈의 실현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참으로 믿는 이들을 통해서 실현되기 마련입니다. 

 

이미 그 아득한 옛날 호세아 예언자를 통해 환히 계시되는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계시됩니다. 배신당한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의 호소는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의 무딘 마음을 두드립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호세아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들은 바알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우상들에게 향을 피워 올렸다.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이집트에서 구해내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징하는바 하느님을 잊은 오늘의 우리들입니다. 역시 무지의 죄, 무지의 병, 무지의 악입니다.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떠나면 무지와 허무의 어둠 속에 자기를 잃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사랑에 정통한 호세아 예언자를 통해 자애로운 하느님 마음이, 인간의 배은망덕의 무지에 답답해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바로 우리의 하느님은 이런 어머니 같은 분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연민의 사랑과 하나 된 호세아 예언자입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라는 말마디가 강렬합니다. 바로 우리가 끊임없이 닮아가야 할 어머니 같은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예전 감자를 캘 때 흙을 통한 간접적 어머니 사랑 체험의 <뽀얀 피부 곱게 자란>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그 뽀얗게 빛났던 감자들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기들 같아요!”

  감자 캐던 한 자매의 탄성

  어머니 흙 품에서 

  몇 달 동안

  뽀얀 피부 곱게 자란

  토실토실 크고 작은 귀여운 

  감자 자식들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구나<2009,7 >

 

이런 웃음은 바로 <하느님 어머니의 웃음>을 상징합니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품을 상징하는 흙이요 바로 호세아가 소개하는 하느님은 바로 이런 어머니 흙 같은 분입니다. 흙humus에 어원을 둔 사람homo이요 겸손humilitas입니다.  바로 이미 이런 어머니 흙 같은 품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호세아 예언자의 하느님 마음을 그대로 전수받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역시 어머니 같은 하느님 마음에 정통했던 분입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하늘나라의 임재와 더불어 제자들을 통해 일어나는 치유입니다. 예수님은 물론 주님의 권능을 부여받은 제자들 또한 그대로 하늘나라 꿈의 실현입니다. 알고보면 우리의 불행과 비극은, 병고는 하느님을 떠남에서 스스로 자초한 화임을 깨닫습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날 때 하늘나라의 실현이자 영육의 치유입니다.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자 몇이나 될까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떠나니 죄도 많고 병도 많은 세상입니다. 하느님을 떠나 죄로 인해 삶의 균형과 조화가 깨질 때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병들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치유에 온전한 삶입니다. 마지막 말마디가 우리 모두에 대한 주님의 자비로운 명령입니자.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당대의 사도들뿐 아니라 우리의 삶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은총 아닌 것이, 선물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발적 기쁨으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주님 자비의 통로가 되는 삶, 정말 자유롭고 부요하고 행복한, 건강하고 지혜로운 주님의 자녀다운 참 나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당대 주님의 제자들이자 사도들의 삶은 우리 삶의 모범입니다. 소유가 아닌 존재의 삶을, 무소유의 삶을 택한 제자들이요, 그대로 주님 사랑의 통로가, 치유와 평화의 도구가 된 사도들입니다. 물신주의, 금전만능주의, 소비주의, 쾌락 추구의 타락한 현실에 하늘나라의 꿈과 비전은, 무욕의, 무소유의 정신은, 영성은 필수입니다. 바로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한 것이 곳곳에 산재한 교우들의 환대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사랑의 도구가, 치유와 평화의 도구가 된 사도들을 환대함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는 집착 없는 무욕과 이탈의 초연한 사랑의 삶일 때 자연스럽게 따라 오는 환대입니다. 민폐를 최소화 하여 이곳저곳 떠돌지 말고 마땅한 곳을 찾아 머물러, 그 집에 평화를 선물하라 합니다. 환대에 대한 주님 평화의 선물입니다. 환대의 의무가 얼마나 절대적인지 다음 구절이 입증합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사도들을 환대하지도 않고 말을 듣지도 않은 이들에 대한 심판이 참 엄중합니다. 새삼 환대 자체가 축복이요 반대로 냉대는 스스로 자초한 재앙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모두가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입니다. 끊임없이 주님을 만나 치유 받아 온전한 삶을, 하늘나라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치유의 도구가, 평화의 도구가. 주님 환대의 사람이 되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무욕과 사랑의 하늘나라 삶에 지치지 않도록 합시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를 돕습니다. 

 

“주님,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시편80,4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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