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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신부] 26.09.16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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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9-16 08:57 조회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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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16.수요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253)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258) 기념일


1코린12,31-13,13 루카7,31-35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온전한 삶’

“사랑의 여정”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

 그분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시편34,12)

 

영혼이, 마음이, 정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몸 관리에 몸 건강도 중요하지만 평생 우선적으로 관리해야 할 영혼 건강, 마음 건강, 정신 건강입니다. 병든 영혼들, 병든 마음들, 병든 정신들 얼마나 많습니까? 이래서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평생 배워야할 사랑이요 평생 공부가 사랑입니다. 사랑은 아무나하나? 평범한 질문 같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입니다. 사랑도 평생 배우고 공부해야합니다. 참 신기한 것이 아무리 공부해도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것을 배울 때는 바람처럼 빠르게 하고, 허물을 고칠 때는 우레처럼 과감하게 하라.”<다산>

 

바로 사랑이 그러합니다. 제가 평생 사랑을 보고 배울, 늘 곁에 모시고 사는 위대한 스승은 셋입니다. 하나는 하느님이요, 둘째는 자연이요, 셋째는 내 몸담고 사는 수도공동체입니다. 바로 이 세 스승으로부터 날마다 사랑을 배웁니다. 배우고 배워도 끝이 없는 사랑 공부입니다. 자연을 통한 사랑의 깨달음을 노래한 오래전 두 편의 시가 생각납니다.

 

“사랑에 

 깨달음에 눈뜬다는 것은

 온 세상 향해 활짝 피어나는 

 꽃같은 게 아닐까

 사랑에 

 깨달음에 꽃처럼 피어나는 

 영혼이 아닐까"<깨달음;2001.4.9.>

 

“꽃처럼 

 말아닌 삶으로 

 활짝 피어 고요히 화안히 살고 싶네

 나무처럼

 말아닌 삶으로

 가슴 활짝 열어 하늘 가득 담고

 고요히 살고 싶네”<꽃처럼, 나무처럼; 2001.4.3.>

 

진정한 성장과 성숙은 사랑의 성장과 성숙입니다. 가을의 둥글게 크게 잘 익어가는 배 열매들, 그대로 잘 익어가는 사랑의 원숙圓熟한 가을 인생을 상징합니다. 과연 사랑의 열매들 잘 익어가는 가을인지 필히 점검해 봐야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그러니 우리 삶은 <사랑의 여정>이자 평생 졸업이 없는 <사랑의 학교>임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모나게 살았으니 너희는 둥글게 살라”고 제자들에게 둥글 “원(圓)자” 돌림의 법명을 지어 주었다는 불가의 대선사 성철 스님도 생각납니다.

 

주님을 닮아 사랑의 대가이자 사랑의 달인인 사도 바오로의 제1독서 코린토 전서 13장, 사랑의 대헌장은 늘 들어도 새로운 감동입니다. 우리 사랑의 정도를 환히 비춰주는 <하느님 사랑의 거울> 같습니다. 서두부터 우리를 압도합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음은 여전히 허전합니다. 이어지는 사랑의 구체적 동사 항목들이 참 명쾌합니다.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닌 구체적 실행 동사입니다.

 

1.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2.사랑은 친절합니다.

3.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4.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5.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6.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은 아가페 순수한 사랑입니다. 생명을 주는 사랑, 존중과 배려의 사랑, 대자대비 연민의 사랑, 자유롭게 하는 사랑, 무집착의 초연한 사랑이요 바로 하느님을 닮은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은 그대로 지혜입니다. 인간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도, 평생 공부도 이런 사랑뿐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무지의 편견으로 병들고 왜곡된 영혼들에 대한 치유도 이런 사랑뿐이 없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 무디고 굳어진 무감각, 무감동의 세대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무엇과 같은가?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놀랄 줄 모르고, 기뻐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고, 노래할 줄 모르고, 춤줄 줄 모르고, 웃을 줄 모르고, 울 줄 모르고, 슬퍼할 줄 모르고, 시를 즐길 줄 모르는 상태의 병든 영혼들을 상징합니다. 바로 일부 예수님을 향한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이 그러합니다. 빵도 포도주도 마시지 않는 세례자 요한에게 “마귀가 들렸다.” 하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예수님에게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편견을 사실인양 확정지어 버립니다, 

 

복음의 결론 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지헤의 자녀들은 아가페 사랑의 자녀들인 하느님의 자녀들을 가리깁니다. 과연 하느님의 자녀답게 아기페 사랑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우리들인지 살펴보게 합니다. 바로 이런 사랑과 지혜의 모범이 성인들이요 오늘 기념하는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들>입니다.

 

순교의 사랑이 사랑의 진정성을 입증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예수님께 대한, 교회에 대한 사랑은 물론 신자들에 대한 이타적 탁월한 아가페 사랑의 대가들이 바로 이 두 순교자들입니다. 두 분 다 아프리카의 최초 순교자들로 고르넬리오 교황은 253년, 치프리아노 주교는 258년 순교하였고 이 두분은 의기투합했던 친구관계였습니다. 

 

극단주의자 노바시우스 사제에 반대해 회개하여 돌아 온 배교자들을 용서하고 교회에 받아들인 착한목자 고르넬리오 교황이요 이의 전폭적 지지자가 친구 치프리아노 주교입니다. 바로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노가 교황 고르넬리오에게 쓴 편지 중 감동적인 대목이 두 분의 우정이 주님 안에서 얼마나 한결같고 순수하고 깊었는지 깨닫게 합니다.

 

“만일 하느님의 우리중 하나에게 은총을 주시어 일찍 죽게 한다면, 우리의 우정은 주님 앞에서 계속될 것이다.”

 

성 치프리아노는 가톨릭교회의 일치를 위한 글에서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그리스도도 한 분 이시며, 교회도 하나이고 신앙도 하나이다.”라는 말을 남겼고, 258년9월13일 사형선고를 받은후 유일한 대답은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였습니다. 다음 그는 스스로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눈을 가린 후 참수됨으로 순교의 월계관을 받게 됩니다.

 

사랑뿐이 길이, 답이 없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무사한 사랑, 이타적 아가페 사랑이 우리를 온전한 참사람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줍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런 <사랑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게 합니다.

 

“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

 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시편33,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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