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7.08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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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7-08 08:58 조회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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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8.연중 제14주간 수요일
호세 10,1-3.7-8.12 마태 10.1-7
우리는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이다
“늘 새로운 시작”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시편105,3)
오늘도 역시 두서없이 일기 쓰듯, 공부 하듯, 자유롭게 쓰는 강론이요,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주님의 제자답게 사도답게 사는 데 모두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자작시집을 펴는 순간, <연민>이란 시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말자 싫어하지 말자
용서하자 불쌍히 여기자
세상에는
그 누구의 눈길 손길 발길 한 번도 닿지 못해
만남의 꽃 제대로 피워보지 못한 채
외롭고 서럽게
쓸쓸히 살다가 사라져가는 생명들도 참 많을 거다
내려다보는 하늘 님은 다 아시겠지만”<2000.9.17.>
하느님처럼 깊고 그윽한 연민의 눈길을 지니고 살자는 것입니다. <공동선 7-8월> 잡지 표지 글도 마음에 담습니다.
“존중, 이해, 포용; 이제는 자신의 이념이나 가치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걸 넘어서서 상대방을 포용할 때.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가는 길, 그것이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이다.”
소설계의 살아 있는 거장 <황석영>의 인터뷰 대목도 좋은 가르침입니다.
“혼자만의 감옥에서의 독서는 관념주의자나 신비주의자로 만든다. 관념의 기둥들만 남는다. 독서도 소통하며 해야 한다. 감옥에서의 화두는 일상이다. 일상의 재편성이다.”
<더불어> 삶 중의 독서요, 평범한 일상을 늘 새롭게 충실히 살아내는 일이 참 중요하다 싶습니다. 시대의 스승, 신영복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최고의 독서”라 했습니다. 저 역시 면담성사시 <삶의 성경 이야기>를 렉시오 디비나 하듯 경청합니다. 오늘 옛 현자의 지혜도 좋습니다.
“우리는 눈앞의 것을 좇느라 원대한 계획을 잊어버린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과 꾸준함이다.”<다산>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서두르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좇으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논어>
다시 상기하는 우보천리牛步千里,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삶의 자세입니다. 7월5일부터 7월25일 까지 간돌포 성에서 여름 휴가를 갖는 레오 14세 교황이 부럽습니다.
“레오 교황; 간돌포 안에서 교구의 가난한 이들 200여명과 점심식사를 나누다”
휴가 전날 7월4일 토요일 인근의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나눈후 여름휴가에 들어간 참 멋진 레오 교황입니다. 간돌포 성의 교구 사제는 말합니다.
“우리는 레오 교황이 여기서 ‘참 휴식을 즐기기를(enjoy true rest)’ 희망합니다.”
제 소망은 일일시호일, 얼마 남지 않은 인생 휴가 오늘 지금 여기서 하루하루 감사하며 아름답게 겸손히 기쁜 마음으로 일이 놀이처럼 참 휴식을 즐기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이들에게 자기의 권한을 위임하신후 사도로 파견하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공동체에 부르심 받아 속함으로 비로소 무명의 익명의 존재에서 비로소 존재감 충만한 삶을 살게 된 이들입니다. 그대로 제자공동체에, 사도공동체에 속한 신분들임을 확인합니다. 안으로는 주님의 제자, 밖으로는 주님의 사도입니다. 별개의 두 신원이 아니라, 한 실재의 양면의 신원임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 중심으로 다양성의 일치를 이룬 공동체입니다.
그대로 교회공동체, 수도공동체의 원형입니다. 열둘이, 우리가 부르심을 받지 못했다면?..부질없는 가정의 질문입니다. 결코 우연이 아닌, 이미 하느님 섭리의 손길이 작용했음을 봅니다. 열둘의 면면이 참 다양합니다. 다름이 공동체의 풍요함이자 모두를 포용한 일치의 중심으로서 예수님의 탁월한 리더십에 경탄합니다. 일치의 중심이신 예수님은 일치의 목표와 꿈을, 비전을 제시합니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는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여라.”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께는 이스라엘을 넘어 길 잃은 세상 모든 양들이 선포의 대상입니다. 늘 <파스카 예수님>을 삶과 공동체의 중심으로 삼을 때, 또 <하늘나라의 꿈과 비전>을 삶과 공동체의 궁극의 목표로 삼을 때 방황하거나 타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예수님 중심을, 하늘나라 목표를 새롭게 확인함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중심과 하느님 경외와 정의의 목표가 사라졌을 때 하느님 중심 자리는 우상들이 자리 잡고 타락과 더불어 무너지는 공동체들입니다. 참으로 오늘날 우상들은 다양합니다. 호세아의 경고가 참 엄중합니다.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들도 많이 만들고 땅이 좋아질수록 기념 기둥들도 좋게 만들었다. 그들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하니 이제 죄값을 치러야 한다. 그분께서 제단들을 부수시고 그 기념 기둥들을 허물어 버리시리라.”
오늘날 외형적 무분별한 개발, 발전으로 치닫는, 눈먼 무지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종교인들과 신자들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호세아의 경고 말씀이 거듭 불을 뿜습니다.
“사마리아는 망하리라. 그 임금은 물 위에 뜬 나뭇가지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죄악인 아웬의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그 제단들 위까지 올라가리라.”
세월 지나면서 타락은 자연스런 현실처럼 생각됩니다. 발전의 황금기에서 망조亡兆를 보는 예언자의 눈은 그대로 하느님의 눈입니다. 길 잃은, 꿈을 잃은 온 세상 사람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느님 중심이라지만 세상을 닮아 돈 중심의 돈 중독의 종교가 되어간다면 말 그대로 세상을 닮아 속화입니다. 세상을 성화하고 정화해야 할 종교가 세상을 닮아 원래의 순수와 열정이 오염되어 속화되면 답이 없습니다. 호세아 예언자의 결론 말씀이 참 상쾌한 감로수처럼 마음의 갈증을 해소합니다.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
바로 여기 오늘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요 만날 때입니다. 다시 한 번 외워보는 제 좌우명 자작시입니다.
“산 앞에 서면
당신 앞에 서듯 행복하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자, 시같은 하루 시같이 살자.”
산들이 많은 산의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삶>이란 자작시도 눈에 띕니다.
“꽃만 보면 뭘 하나?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게 살아야지
산만 보면 뭘 하나?
산처럼 느긋하고 기품 있게 살아야지
산 많은 나라에 태어나
늘 산을 보며 살면서 왜 예산禮山처럼 덕산德山처럼
살지 못하나?
부끄럽지 않나?”<2000.12.26.>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하루하루 <주님의 제자답게, 주님의 사도답게>, 산처럼 <늘 새로운 시작>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시편105,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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