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7.06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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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7-06 09:06 조회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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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6.연중 제14주간 월요일
호세 2,16.17ㄷ-18.21-22 마태 9,18-26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
“믿음과 치유”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시편145,8)
하느님을 사랑하는 수도승은 생래적으로 침묵과 고독을 사랑합니다. 바로 사막을 찾았던 까닭이기도 합니다. 다산 현자의 가르침도 침묵을 통해 깨닫는 진리입니다.
“세상은 나에게서 비롯되고, 나는 공부에서 비롯된다. 나를 닦는 공부의 길은 세상을 편안하게 하는 길이다.”
바로 이런 공부가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참 공부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오래전 짧은 영어 말마디입니다.
“As you are, so is the world”
(너 정도만큼의 세상이다)
세상에 앞서 나의 변화가 우선이요 더불어 세상의 변화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익명의 성인들입니다.
요즘 많이 생각하는 침묵입니다. 요즘 게시판에 붙여놓고 자주 읽어보는 내용입니다.
“침묵을 사랑하라. 침묵을 배우라. 침묵의 하느님, 침묵의 신비, 침묵의 믿음, 침묵의 사랑, 침묵의 지혜, 침묵의 치유다. 생명의 말씀도 침묵에서 나온다. 이런 침묵은 하느님의 현존이다. 침묵의 답이다.”
침묵의 지혜에서 나온 다음 제 말마디에 내심 만족했습니다. 엊그제 고백신부는 저에게 고백성사를 봤고, “취침 전까지 하루 행복하게 사시는 것입니다.”보속을 드렸더니 “힘든 보속입니다.” 하며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또 하나 요즘 수도원에서 일하는 부부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부부이자 친구 같은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덕담에 만족해하는 모습 등, 이 두 경우의 덕담들 그대로 모두 침묵의 열매이자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침묵에 관한 옛 자작시 두 편도 생각납니다.
“불암산 기도원의
휘황찬란한 X-mas 츄리 침묵을 깨다
말, 소리뿐 아니라
요란한 빛깔, 색깔, 모습, 행동도 침묵을 깨는구나
고요하고 깊고 평화로워
침묵을 깨지 않는
말, 빛깔, 색깔, 모습, 행동이었으면 좋겠다”<1998.12.18.>
<침묵>에 이어 <꽃의 침묵>이란 시입니다.
“눈길
주든 말든
하늘 님만으로 충만하다 행복하다
말없는
말 되어 산다
작지만 크게 산다
꿈처럼
피어난 장미 꽃송이들
온 주변이 환하다 고요하다”<2001.10.26.>
흡사 오늘 제1독서 호세아서 주님 말씀이 침묵의 광야에서 우리 각자에게 들려오는 말씀처럼 생각됩니다.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 신의와 자비,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
우리 또한 영적으로 하느님의 반려자인 이스라엘입니다. 사랑과 앎은 함께 갑니다. 이런 자애로운 주님과 날로 사랑을 깊이 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런 소망을 노래한 글도 생각납니다.
“세월 흘러
묵을수록 익어
맛 깊어가며
날로 향기 그윽해지는 술처럼
당신과의 사랑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2005.7.>
이런 호세아서의 주님의 정의와 공정, 신의와 자비, 진실의 모습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모습>하니 어제 읽은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노년은 모습이 아니다. 저마다 철학과 태도를 살아내는 다채로운 삶이며 죽음 또한 배워야 할 삶의 일부다.” <성화聖化의 여정>에 좋은 도움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예수님과 회당장, 그리고 열두 해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자입니다. 침묵 중 익어갔을 회당장과 혈루증을 앓던 여자의 간절한 믿음입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언제나 주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우리의 간절한 믿음이었습니다.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말그대로 회당장의 간절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속으로 생각하며 예수님 옷자락에 손을 대 혈루증을 앓던 여자 역시 간절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감동적인 치유선언입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대로 미사중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딸 대신 내 이름을 넣어 평생 화두로 삼고 지내시기 바랍니다. 회당장의 집에 도착한 주님은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소란한 무리들을 물리친 후 침묵중 소녀의 손을 잡자 소녀는 일어납니다.
부활을 상징하는 말마디가 <일어나다>입니다. 회당장의 간절한 믿음에 응답하여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은 회당장의 딸을 살려내신 것입니다. 제가 신자들에게 자주 드리는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라.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자포자기의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죄다. 그러니 ‘탈리타 쿰!’ 하고 즉시 일어나라.”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믿음의 치유>와 더불어 <다시 일어나> 부활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시편145,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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