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9.15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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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9-15 09:33 조회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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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15.화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히브5,7-9 요한19,25-27
우리 순교적 삶의 영원한 모범
“마리아 성모님”
“동정 성모 마리아님, 복되시나이다.
당신은 주님의 십자가 아래서
죽음 없이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셨나이다.”(복음 환호송)
9월 순교자 성월, 우리의 순교적 <삶의 좌표>가 되는 마리아 성모님입니다. 어제 아드님의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이어 오늘 9월15일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집무실에서 커튼을 열면 한 눈에 들어오는 정원의 바늬 성모님상입니다. 바늬 성모님과 더불어 연상되는 아드님 시신을 안고 계신 <피에타의 성모님>도 떠오릅니다. 예전 써놨던 <늘 거기 그 자리에>란 고백시도 생각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덥거나 춥거나
당신 늘 거기 그 자리에
산처럼 계시기에
당신 존재 자체가 기쁨과 위안입니다
늘 바라보는 산 같은 당신이요
이렇게 빗소리 들으며 비안개 자욱한 산을 보노라면
더욱 보고 싶어지는 당신, 마리아 성모님입니다”<2006.9. >
어렸을 때 하교하여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찾았던 어머니요, 객지에서 공부할 때, 군대에 있을 때, 수도원에 들어와서도 가장 생각났던 어머니였습니다. 자주 인용해도 그리운 마음에 또 인용하는 <어머니를 그리며> 시중 한 대목입니다.
“그 흔한 종교나 신앙 없이도 한결같이 사셨던 내 어머니
삶 자체가 기도였고 신앙이셨다
이리저리 감정에 연약하게 흔들렸던 분이셨다면
그 험한 세상 세월에 다섯 남매 어떻게 키웠을 것인가
‘외롭다’ 거니 ‘그립다’ 거니 감정 표현 없이도
따사로운 남편 사랑 없이도
흔들림 없이 꿋꿋이 가정을 지켜 오신 어머니
내 아버지 원망에도 일체의 동조없이 침묵으로 일관하시다가,
'네가 아버지 없이 어디서 나왔느냐?' 는 한마디로 내 말문을 닫으셨다"<2005.3. >
오늘 기념하는 마리아 성모님 역시 아드님으로 인해 온갖 고통을 다 겪었던 분입니다. 중세 시대에는 슬픔의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크게 번성했습니다. 14세기 이후 신자들은 마리아의 일곱 가지 슬픔을 널리 묵상하였습니다.
1.시므온의 예언, 2.이집트로의 피난, 3.어린 예수님의 사흘간의 실종,
4.골고타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
5.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죽음,
6.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님, 7.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
성모칠고에 이어 오늘 복음에 앞선 20절까지 부속가도 구구절절 성모님의 슬픔을 노래합니다. 이처럼 마리아의 고난을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성모님이 아들의 구원사업에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이자 가장 가까운 제자였습니다.
슬픔의 성모 축일 제정 허가는 1667년 세르비테 수도회에 처음으로 주어졌으며 1688년 인노첸시오 11세 교황이 이 기념일을 정합니다. 1814년 교황 비오 7세는 이 축일을 로마 가톨릭 성인력에 포함시켜 라틴교회 전체로 확대했고, 1908년 성 비오 10세 교황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인 오늘 9월15일로 이 기념일을 옮겨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에 연결하여 기억하게 했습니다.
예나 이제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통중의 어머니들은 마리아 성모님의 고통에 참여하는 또 하나의 마리아 성모님들이십니다. 오늘 복음의 십자가의 예수님 발치에 있는 성모님은 아드님처럼 케노시스, 비움의 절정 상태에 계십니다. 성모님 역시 아드님처럼 순종의 여정, 비움의 여정에 항구했음을 봅니다.
온전히 믿음으로 아버지께 아드님을 맡기시고 자신을 온전히 믿음으로 비우신 것입니다. 성모님의 평상시 자기 비움의 삶과 신앙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런 성모님의 삶을 그대로 보고 배운 아드님이요, 단숨에 읽혀지는 오늘 히브리서 말씀이 참 감동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셨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참 귀한 진리를 깨닫습니다. 우리 삶은 평생 고난을 통해 겸손히 순종을 배우는 <순종의 학교>입니다. 물론 자발적 사랑의 순종입니다. 성모님의 삶이, 아드님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니 삶의 모든 고통이나 어려움을 순종을 배우는 겸손의 계기로 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 잘 드러납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입니다. 흡사 오늘 복음이 미사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위로는 십자가의 예수님이 옆으로는 고통의 마리아 성모님이 계십니다. 바로 여기가 언제나 우리 <삶의 제자리>요, 두 분으로부터 늘 보고 배워야 할 겸손과 순종의 믿음입니다. 그대로 미사중 파스카 예수님께서 마리아 성모님과 우리 각자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자녀입니다.”
이어 주님은 성모님 옆에 있는 애제자에게 확인시킵니다.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이 애제자가 상징하는바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고 따르는 모든 교회, 모든 세대의 모든 제자들입니다. 그 제자가 성모님을 모셨듯이 우리도 날마다 성모님을 모시고 성모님과 함께 주님을 섬기며 따르는 복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진리를 매일 새롭게 확인하는 미사은총입니다.
“주님,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시편31,17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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