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28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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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7-28 09:17 조회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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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28.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예레 14,17ㄴ-22 마태 13,36-43
주님 안에서 밀과 가라지의 공존과 심판
“인내와 겸손, 자비와 지혜, 희망의, 의인의 삶”
“저희 구원의 하느님,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를 구하소서.
당신 이름 위하여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시편79,9)
삶이 답답하고 빛이 보이지 않을 때는 옛 현자들이나 옛 자작시를 찾게 됩니다. 주님 안에 머물러 쉴 줄 아는 관상의 능력을 잃어버리니 날로 바빠지고 피로해지는 일중독의 시대, 식자우환의 병든 시대, 무지에 눈먼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 가득한 시대가 된 듯합니다. 참으로 광야인생, “성인이냐 괴물이냐 폐인이냐?” 셋 중 하나 됨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옛 현자의 지혜와 자작시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오늘 일을 잘 모르면 옛날을 비춰보고, 미래를 알지 못하면 과거를 살펴보라.”<관자>
“하루를 마치며 되돌아본다. ‘나는 오늘 나로 산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다산>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을 아들다워야 한다.”<논어>
우리 믿는 이들의 경우라면, 아버지의 자녀는 자녀답게, 주님의 제자는 제자답게 살면 되겠습니다. 어떻게? 옛 자작시 세편을 나눕니다.
“꽃마다 그리도 반갑고 아름다운 건
잠시 동안 폈다지기 때문이다
일 년 내내 피어있는 꽃이라면 누가 반갑다 아름답다 하겠는가?
인생이 그리도 반갑고 아름다운 건
잠시 동안 살다 떠나기 때문이다
영원히 사는 인생이라면 누가 반갑다 아름답다 하겠는가?
아, 꽃지므로 꽃 좋은 줄 알겠다
죽음 있어 삶이 선물인 줄 알겠다
짧은 인생 매일 꽃처럼, 주님 파스카의 꽃처럼
반갑고 아름답게 살다 갈 일이다”<그리도 반갑고 아름다운 건;2006.6. >
“눈부시게 밝고 화려한 꽃 있어
어두워 깊고 신비로운 꽃 좋은 줄 알겠다
어두워 깊고 신비로운 꽃 있어
눈부시게 밝고 화려한 꽃 좋은 줄 알겠다
겸손히 배움이 제일이다
네가 있어 내가 좋고 내가 있어 네가 좋은 줄 알겠다
너 없이는 나도 없고 나 없이는 너도 없음을 알겠다
모두가 서로에게 축복의 선물인줄 알겠다
관계의 조화속에 계시되는 제 고유의 모습들이다“<관계의 조화속에;2006.6.>
“알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지극히 소중한
살아 있는 성경 하느님의 책이다
모두 나름대로 희망의 순례자 되어
하느님 바다 향해 굽이굽이 은총 반짝이며
때로는 고요히 또 때로는 힘차게 쉼 없이 흐르는 강 같은
죽어야 끝나는 오직 한 권뿐인 살아 있는 인생 성경책이다
그러니 그 누구도 하느님을 대하듯 존경과 사랑으로 그 인생성경을 대할 일이다
자주 내 인생성경을 ‘렉시오 디비나’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을 일이다”
<내 고유의 인생성경책;2006.7. >
결국은 문제는 나에 있음을 봅니다. 부지런히 내적 시야를 넓히고 깊이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시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 해설에서 초대교회는 물론 예수님과 하느님의 인내와 지혜를 배웁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인내가 사랑이요 지혜임을 배웁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차별 없이 밀과 가라지를 키웁니다. 누가 밀이고 가라지냐 찾을 것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에 깊이 뿌리내리고, 하느님의 인내의 사랑을 배우며,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밀과 가라지, 고정불변의 실재가 아니라 모두 우리의 가능성입니다. 하느님의 기다리는 인내의 사랑에 회개하여 가라지도 밀이 될 수 있고, 소홀과 태만으로 밀도 가라지가 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배우는 하느님의 사랑과 인내입니다. 하느님의 눈물은 그대로 가슴 아픈 하느님의 인내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그들에게 이 말을 하여라. 내 눈에는 눈물이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 처녀 딸 내 백성이 몹시 얻어맞아 너무도 참혹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인내의 사랑에, 슬픔에 정통한 예레미야의 탄원이 감동적입니다. 잠시 원망과 더불어 회개의 탄식이 따르고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되돌아가 하느님을 제대로 고백합니다. 끝부분만 인용합니다.
“이민족들의 헛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비를 내려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 분은 주 저희 하느님이신 바로 당신이 아니십니까? 그러기에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둡니다.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헛것들이 난무하고 활보하는 시대입니다. 헛것들에 빠져 살다보니 좀비같은 인생이 되고 무지와 허무의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지혜로 표현되는 하느님의 인내와 겸손을 배우고 이런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일체의 최종 심판은 자비하신 하느님께 맡기고, 부단히 자비하신 하느님의 인내의 겸손, 지혜와 사랑을 배우는 것이요, 끝가지 이런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밀과 가라지에 대한 최종 심판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이나 하느님의 관점이기보다는 초대교회의 해석입니다. 해석의 요지는 밀과 가라지에 대한 최종 심판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역이라는 것이요, 이 또한 우리 삶에 좋은 경고가 되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성 베네딕도의 말씀을 다시 상기하게 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하루하루 “인내와 겸손, 자비와 지혜, 희망의 삶”을, “의인의 삶”을 선택하여 살게 하십니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13,4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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