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7.03 성 토마스 사도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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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7-03 08:59 조회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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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3.금요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에페 2,19-22 요한 20,24-29
壁이 변하여 門으로
“주님과의 만남”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모든 겨레들아.”(시편117,1)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옛 현자 다산의 말씀이 공부의 차 목적을 말해 줍니다.
“배워서 쓸 수 없는 공부는 의미가 없다. 다른 사람을 키워주는 공부가 진정한 공부다.”
“군자의 학문은 수신이 반이요, 나머지 반은 백성을 위한 것이다.”
참 그리스도인의 공부도 이라 해야 함을 배웁니다.
레오 14세 교황의 <7월 지향 기도> 제목은 “인간 생명의 존중을 위하여”이며 이에 대한 설명이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를 사랑으로 창조하셨고, 참으로 온전히 살도록 우리를 부르셨다. 각자 인간은 그들의 지상 여정 중 존재의 첫 아기로부터 마지막 숨 쉴 때까지 주님의 얼굴을 반사하는 거룩한 선물이다. 오늘 우리는 모든 인간의 독특하고 대체할 수 없는 이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자.”
어제의 감동적인 아름다운 장면도 잊지 못합니다. 원장 수사를 비롯한 수도형제들과 손님 두 분을 포함해 모두 11명의 젊은 형제들이 <평화의 집> 주변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공동노동 울력 시간을 가졌습니다. 울력 후 잠시 간식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중 대화 나누는 모습이 참 밝고 아름다웠습니다. 공동기도는 물론 공동육체노동도 참 좋은 공동체 형성에 지대한 도움이 됨을 실감했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눈만 열리면 온통 배울 것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래서 우리 삶은 배움의 여정이요 배움을 사랑하여 배우는 일에 지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의 주인공인 <예수님과 토마스>의 만남에서 참 귀한 가르침을 배웁니다. 오늘은 마침 <성 토마스 사도 축일>이기도 합니다.
주님을 만나 실제 눈과 손으로 확인해 보지 않고는 주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는 참으로 완강했던 토마스가 일주일 후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부활한 주님이 오시어 제자들 한 가운데 서시며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평화요 우리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참 좋은 선물도 주님의 평화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평화를 찾아 무수한 분들이 주님의 집이자 평화의 집인 여기 요셉 수도원을 방문합니다.
주님의 임재와 더불어 태풍이 미풍으로 바뀌듯, 두려움의 벽은 변하여 평화의 문이 되니 참 놀라운 은총의 선물입니다. <벽이 변하여 문으로> 바로 오늘 강론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보면 우리 삶은 주님을 닮아 날로 <벽은 변하여 문이 되는 여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마침내 무위의 참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쓴 오래전 <머물 수 없음이 병이다>란 시가 생각납니다.
“무엇인가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인간
가만히 머물 수 없음이 病이다
있음being의 기쁨에 만족하지 못하고 행함doing의 결과에
보람을 느끼는 인간
자취를 확인하고 인정받을 때 자기 성취의 보람을 느끼는 인간
익명의 삶, 자취 없는 삶, 무위의 삶을 즐길 수는 없나?
쓰레기 내어 오염시키지 않는
무위無爲의 청정淸淨한 나무로 살 수는 없나?”<1998.3.6.>
아마도 문이신 주님을 닮아 날로 자기ego의 벽이 문으로 변해갈 때 이런 무위의 청정한 나무와 같은 삶도 가능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벽이 없었던, 모두가 들어 갈 수 있는 온통 사방으로 활짝 열린 <구원의 문>, <생명의 문>이셨습니다. 더불어 토마스의 의심의 벽도 활짝 열려 주님의 정체를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렇게 예수님을 주님이자 하느님으로 고백한 이는 토마스가 유일합니다. 토마스 덕분에 이미 우리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라는 주님의 귀한 진리도 배웠습니다. 이어 토마스에게 주시는 말씀은 우리의 믿음생활에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평생 화두로 삼아야할 말씀입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성 토마스 사도의 행적도 참 특이 합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에데사에는 토마스가 인도의 사도였다는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토마스의 유골이 인도에서 에데사로 옮겨졌고, 남인도 케랄라 주의 지역교회는 토마스가 남인도 첸나이 근처에서 순교했다는 전승을 뒷받침합니다. 첸나이 근처에는 사도가 72년에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성 토마스 산이라는 작은 언덕이 있고 성인의 유해가 옮겨졌다고 전해지는 마일라푸르 성 토마스 교구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성 토마스 사도 역시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기초가 되었다는 사실이 참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갖게 합니다. 에페소서의 바오로 사도가 교회의 정체를 잘 알려 줍니다. 그대로 우리를 향한 가르침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이돌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지고 있습니다.”
완성을 향해 계속 성장 중인 미완의 살아 있는 <하느님의 거처>가 된 교회공동체임을 배웁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 교회 공동체의 성장과 성숙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 중 그리스도의 몸을 모심으로 그리스도의 평화를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주님 사랑 우리 위에 꿋꿋하셔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셔라.”(시편117,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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