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6.30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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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6-30 09:10 조회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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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6.30.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아모 3,1-8;4,11-12 마태 8,23-27
미풍을 태풍으로 바꾸지 말고, 태풍은 미풍으로 바꾸라
“삶의 지혜, 믿음의 지헤”
“주님, 당신의 정의로 나를 이끄소서”(시편5,9ㄴ)
오늘 현자 다산의 가르침이 좋습니다.
“두려워할만한 것을 두려워하고, 맞서야 할 만한 것에 맞서라. 그것이 참된 용기이다.”
<참된 용기> 대신 <참된 믿음>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제1독서 아모스서의 구조가 선명히 드러납니다. 서두는 “나는 이 땅의 모든 씨족 가운데에서 너희만 알았다.”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한 주님의 각별한 애정의 표현입니다. 그대로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말씀으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이어 6절까지 답이 분명한 6개의 반어적 의문문이 나열된 후 8절의 결론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으랴?”
이어 마지막 구절의 최종 결론은 회개와 환대로 모아집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스라엘아, 너희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라.”
주님께 돌아오는 회개와 더불어 주님을 환대할 채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사랑은 회개와 환대로 표현되니 바로 주님의 자녀다운 자세가 회개와 환대입니다. 오늘 복음도 우리의 회개와 더불어 환대를 상기시킵니다.
오늘 복음이 상징하는바 깊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풍랑을 가라앉히시다”입니다. 이 복음을 대할 때면 떠오르는 깨달음이 생각납니다. 믿음 부족의 유혹으로 미풍을 태풍으로 바꾸지말고, 태풍은 미풍으로 바꾸는 믿음을 지니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풍랑중의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큰 풍랑 중에도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의 자세와 불안에 안절부절 못하는 제자들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대로 초대교회의 불안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제자들과 예수님이 주고받은 문답이 우리에게는 좋은 공부가 됩니다.
“주님, 구해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대로 오늘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우리의 원초적 정서이며 이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답은 믿음뿐입니다.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니 아주 고요해집니다. 풍랑의 호수가 고요해지니 말 그대로 태풍을 미풍으로 바꾼 주님이십니다.
풍랑 중에도 예수님의 마음은 고요했을 것이나 제자들의 마음은 그대로 풍랑상태였음을 봅니다. 참으로 주님처럼 좋은 믿음을 지닌다면 어떤 풍랑의 상황 중에도 마음은 고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화두입니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그대로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의 예수님 신원이 계시됩니다. 아마도 제자들의 <믿음의 여정>에 신선한 결정적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믿음하면 떠오르는, 이미 요셉수도원의 신화와 전설이 된 마인라도 수사님이요, 더불어 <노老 수사님>이란 시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낙엽들 쓰는 노老 수사님
묵묵히
삶의 뒤안길에서
낙엽과 함께
집착의 쓰레기들
말끔히 쓸어내는
믿음의 노老 수사님
그대로 무념, 무욕, 무심의
가을이었다, 자연이었다”<1998.11.9>
존엄한 인간 품위의 기초가 믿음입니다. 때로 조용히 자문해 보는 질문 셋이 생각납니다. “나는 재앙인가 축복인가? 짐인가 선물인가? 괴물인가 사람인가?” 진정 믿음의 사람일 때 험하고 거친 광야 인생, 이웃과 공동체에 축복의 선물,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회개와 더불어 주님을 환대하는 미사시간이요 주님은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도와주십니다. 이 두 말씀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미풍을 태풍으로 바꾸지 마십시오.”
“태풍을 미풍으로 바꾸십시오.”
바로 믿음의 사람이, 분별력의 지혜를 지닌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시편130,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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