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9.14 성 십자가 현양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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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9-14 08:58 조회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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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14.월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민수21,4ㄴ-9 요한3,13-17
주님의 성 십자가; 삶의 중심
“회개의 표징, 희망의 표징, 구원의 표징”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복음 환호성>
하루에도 수없이 바치는 성호경 기도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자주 온몸에 십자성호를 그으며, 주님과 일치의 상징이자 영적승리의 상징인 성호경 기도를 바치며 삶의 중심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삶의 중심 잡기에 성호경 보다 더 좋은 기도는 없습니다.
대혼란의 시기입니다. 대부분 제정신이 아닙니다.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면서 옆에서 뛰니 모두들 뜁니다. 하느님 중심 자리에는 일, 돈등 온갖 우상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가 그러합니다. 기후재난, 전쟁, 자연파괴, AI등 복합적인 위기상황입니다.
인터넷을 열자 “2030년 인류 멸망? 현실로? AI기업들, ‘일제히 개발속도 늦추자’ 머스크도 동의”라는 기사도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란과 미국의 전쟁도 계속됩니다. 지도자들 잘 못 만나 무고한 수십만의 젊은 군인들이 죽었고 죽어갑니다.
도대체 세상 도처에 안정되고 평화로운 곳이 없습니다. 안팎으로 시끄럽고 모두가 들떠있습니다. 하느님 중심을 잃은, 기도가 사라진 결과의 자업자득의 세상에 이 모두에 대한 답은 <주님의 성 십자가>뿐입니다. 도대체 기도하는 정치인들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믿는 이들뿐 아니라 인류 모두가 궁극적으로 영원히 바라보고 깨달아 보고 배워야 할 삶의 중심은 <주님의 성 십자가뿐>입니다. 관상적 삶의 회복이 절실한 때입니다. <조금은 외롭고 쓸쓸하고 가난한 게 좋다>라는 옛 자작시 한편도 생각납니다.
“조금은 외롭고 쓸쓸하고 가난한 게 좋다
그래야 삶의 환상, 거품 걷히고 본질만 남아
진실해진다, 순수해진다, 넉넉해진다
그러니 외롭고 쓸쓸하면, 가난하고 힘들면 잠시 멈추고
먼 하늘, 먼 산 바라보면서
아니 그보다 먼저
삶의 중심
주님의 성 십자가 바라보면서 가만히 머물러 있어라
은은한 기쁨, 맑은 기운 피어나리라” <2006.9. >
오늘 9월14일은 9월 순교자 성월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참 고맙고 감사한 성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축일의 유래가 흥미롭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공경은 4세기부터 시작됩니다. 326년 9월14일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루살렘 순례중 기적적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발견했고, 황제의 명령으로 십자가가 발견된 자리에 성묘교회가 세워졌으며 335년 봉헌되고 십자가의 일부가 교회 안에 안치됩니다.
콘스탄티노플의 헤라클리우스 황제 때인 627년, 페르시아군은 예루살렘을 정복한후 이 십자가르 가져갔고, 헤라클리우스 황제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검은 옷을 입고 성전에서 간구했고, 이어 페르시아에 승리하여 평화조약을 맺고 이 십자가를 반환받습니다. 황제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했을 때 멈추었고 모두가 놀라고 있을 때,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자카리아가 황제에게 말합니다.
“황제시여, 부디 조심하십시오. 사실 당신이 입고 계신 황제의 옷은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예수님의 비참하고 굴욕적인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헤라클리우스 황제는 신발과 보석으로 장식된 옷을 벗고, 가난한 사람의 튜닉을 입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서 십자가를 세웠고 무수한 기적이 일어났다는 전설입니다. 새삼 주님의 성 십자가 앞에서 우리 삶의 모습을 살펴보게 합니다.
오늘 제1독서 민수기는 십자가의 예표와도 같은 구리뱀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 여정 중, 열악한 환경에 조급해진 백성들이 모세와 하느님께 불평하여 대들다 죽어가자 백성들은 모세에게 살라 달라 기도를 청합니다. 하느님은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명령합니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
모세는 그대로 순종했고 불 뱀에 물린 자들은 구리뱀을 보는 순간 살아납니다. 중재자 모세를 통해, 구리뱀을 통해 은연중 계시되는 중재자 예수님이요 주님의 성 십자가입니다. 구리뱀이 상징하는 바 주님의 성 십자가요 그대로 회개의 표징, 희망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사가는 주님을 통해 니코데모는 물론 오늘의 우리에게 이 진리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사람이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바로 주님의 성 십자가는 구원의 하늘 길이요, 이런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하늘길인 주님의 성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을 표현하는 오늘 복음의 설명이 참 명쾌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성 십자가의 비밀이 환히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의 성 십자가를 바라 볼 때 마다 기억해야 할 복음입니다. 오늘 축일의 감사송도 성 십자가의 은헤를 명쾌하게 밝혀줍니다. 아담의 실패를 일거에 만회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나무에서 인류구원을 이룩하시어, 죽음이 시작된 거기에서 생명이 솟아나고, 나무에서 패배한 인간을 나무에서 승리하게 하셨나이다.”
“이런 하느님의 승리이자 지혜이자 사랑이신, 우리 삶의 중심이신, 영원한 회개의 표징, 희망의 표징, 구원의 표징인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파스카의 주님을 잊었기에, 잃었기에 오늘날의 대혼란의 위기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보고 배우고 깨달아야 할 하느님의 사랑의 모범이 주님의 성 십자가입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이런 영원한 생명의 파스카의 주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주님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우리 구원이요 생명이며 부활이시니,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구원과 자유를 얻었네.”(갈라6,14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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