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9.10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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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9-10 08:58 조회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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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10.연중 제23주간 목요일
1코린 8,1ㄷ-7.11-13 루카 6,27-38
평생공부, 평생학인
“하느님공부, 사랑공부, 사람되는 공부”
“주님, 당신은 저를 살펴보시고 잘 아시나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은 저를 아시고,
멀리서도 제 생각을 알아차리시나이다.”(시편139,1-2)
어제 수도원을 찾았던 중년의 형제분들 둘이 생각납니다. 한 형제는 얼마 전 결혼한 분으로 부부가 함께 방문했습니다. 수도원 방문 후 오랫동안 저와 많은 만남을 통해 면담성사를 봤던 형제들인데 하느님의 섭리로 좋은 신자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룬 분들입니다. 먼저 상대방의 만족점수와 결혼 전과 후의 소감을 물었고 모두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100점 만점에 저는 1000점을 주겠습니다. 아내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두렵고 상상이 안 됩니다.”
또 이어 방문한 신혼부부입니다. 형제는 결혼 후 아내의 암이 발견되어 초기라 쉽게 치료가 이뤄졌다했습니다.
“100점 만점에 만점을 주겠습니다. 정말 아내가 있으니 사는 것 같습니다.”
옆의 자매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남편과 같이 만점을 주겠다했습니다.
새삼 혼자는 구원이 없고 <서로가 사랑으로 구원한다>는 진리를 배웁니다. 사랑은 생명이요 자유요 행복이요 삶의 의미이며 모두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의 빛이 사라지면 허무의 어둠만 가득할 것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사랑입니다. 지금까지 해 온 그 많은 강론들, 써왔던 시들 하나의 주제로 요약되니 바로 <사랑>입니다. 그냥 찾아낸 두 편의 시 역시 주제는 사랑입니다.
“가을 배밭
사랑으로 익어가는 배 열매 향기
참 편안하고 넉넉하다
청춘의 꽃향기 아닌 중년의 익어가는
사랑의 향기 같다
때에 따른 향기라야 좋다”<사랑의 향기; 2010.9. >
사랑으로 둥글게 익어갈 때 <원숙圓熟>한 참사람입니다. 인생가을 원숙하게 익어가는 삶인지 성찰하게 됩니다. 또 하나의 시입니다.
“겸손하고 단순한 삶으로
이끌지 않는 공부는 헛된 공부다
하느님 사랑만을 찾아
깊은 영성으로 더불어 또는 홀로 자유로이
쓰레기 내지 않고
단순소박하게 사는 참사람이다”<참된 공부;2010.9. >
사랑의 진리는 시공을 초월하여 늘 현재적입니다. 오늘 말씀 주제도 사랑입니다.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구체적 실행 <동사>임을 오늘 복음이 증명합니다. 사랑해서 사람입니다. 사랑은 판단의 잣대요 율법의 기초이자 완성입니다. 옛 현자의 말씀입니다. 사랑의 오르막길, 사랑의 내리막길입니다.
“오르막길은 어렵지만 끈기로 성취할 수 있고, 내리막길은 쉽지만 항상 조심해야 한다.”<다산>
평생공부가 하느님 공부, 사람되는 공부, 바로 사랑 공부입니다. 아무리 사랑 공부해도 하느님 보시기에는 늘 초보자 수준일 것입니다. 평생 영적전쟁에 주님의 전사는 동시에 <사랑의 전사>가 됩니다. 황금률 사랑에 이어 거듭 강조되는 원수 사랑입니다. 역시 값싼 사랑은 없습니다. 평생 분투의 노력을 요구하는 사랑입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오늘 복음의 절정이자 요약입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크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자비하신 아버지를 사랑의 롤모델로, 사랑의 경쟁 라이벌로 삼아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하닮의 여정>에 항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비의 하느님을 닮으려는 청정욕淸淨慾은 언제든 좋습니다.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상대방 입장에서, 하느님의 눈으로 관점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내 눈에 원수지 하느님 눈에는 다를 수 있고 원수에게도 필시 피치 못할 사연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도 이해불가는 사람을 대할 때는 “그게 현실이지.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마음을 돌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건드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기도” 합니다. 이건 무관심의 방치가 아니라 하느님께 맡기는 사랑의 최대한 배려입니다. 주님은 더 구체적인 사랑을 명하십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남을 단죄하지 마라. 용서하여라, 주어라” 명하십니다. 모두가 실행 동사들입니다. 부단히 <주고give, 나누고share, 돌보고care, 섬기고serve, 지지하는support> 모든 사랑이 실행 동사들입니다. 추상적 막연한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 실제적 실천의 아가페 무사한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 자유롭게 하는, 순수한 사랑입니다.
서로 주고받는 상호관계의 사랑이 아니라, 그대로 일방적 하느님 사랑을 닮았습니다. 사람 눈에는 하느님 사랑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낭비의 사랑 같아도, 콩나물시루에 콩나물이 자라듯 사랑의 은총이 그 영혼들에는 필시 자양분이 될 것이니 결코 헛된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 제1독서 로마서 8장의 주제는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인데 역시 중심 말마디는 사랑입니다. 바오로의 주옥같은 말씀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그를 알아주십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하느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존재이유이자 우리의 모두입니다. 이런 사랑의 주님 앞에 우상은 없고 모두가 자유롭습니다. 그러니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도 먹을 수 있겠으나, 약한 양심의 형제들에 대한 배려의 사랑으로 이들이 양심이 다치지 않도록 차라리 고기를 영영 먹지 않겠다고 단호한 결의를 표명하는 바오로 사도입니다.
역시 판단의 잣대는 진실이 아니라 사랑임을 배웁니다. 상대방을 크게 다치게 하는 진실이라면 일단 보류하는 것이 지혜의 사랑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과 더불어 날로 주님을 닮아 성장 성숙해가는 우리의 아가페 사랑입니다.
“하느님, 저의 길이 굽었는지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시편139,2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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