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9.09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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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9-09 09:43 조회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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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9.연중 제23주간 수요일
1코린7,25-31 루카6,20-26
참기쁨, 참행복
“하느님 중심의 종말론적 초연한 삶”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16,2)
행복은 선택입니다. 행복은 훈련입니다. 행복은 습관입니다. 행복은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우리들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바라시는바 우리의 행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언젠가가 아닌 오늘 지금부터 행복해야 합니다. 참으로 행복할 때 바로 거기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요즘 고백성사후 보속으로 말씀처방전과 또 하나의 보속을 주면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모두 웃으며 보속을 받아 갑니다.
“오늘 자기 전까지 감사하며 평화롭게 기쁘게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가십시오,”
어제는 환히 웃으며 걸어오던, 아프리카에 살다가 치료받으러 한국에 와서 일주일간 피정중인 수도형제를 만났습니다.
“아, 수사님, 보속 잘하시네요! 웃으며 행복하게 잘 사시네요. 좋습니다.”
피정 1주간 웃으며 행복하게 살라고 보속을 받은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고백성사 받은 분에게는 무조건 오늘 하루 자기 전까지 행복하게 살라는 보속을 줍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참행복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매일 스스로 마주할 수 있는 고독한 시간을 가지라. 인간에게는 자기만의 자리가 필요하다.”<다산>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신실해야 한다. 소인은 한가할 때는 마음대로 행동하다 군자를 보면 슬며시 나쁜 것을 가리고 선한 것만 드러낸다.”<대학>
언제 어디서나 참 행복을 사는 자가 진짜 군자입니다. 오래전 참 행복을 노래한 자작시 2편이 생각납니다.
“늘 그 자리에
머물러
밤새 깨어 기다리다가 맨 먼저
떠오르는 태양
황홀한 사랑
반가이 맞이하는 불암산
이 행복에 산다”<이 행복에 산다; 2010.9. >
“참 재미없고 심심하고 평범하기로는
소나무를 닮았다
그래도 늘 푸른 당신이 참 좋다
내 좋아하는 소씨 성을 가진 이는
‘소나무’와 ‘소(牛)’ 둘이다”<늘 푸른 당신이 참 좋다; 2010.12. >
참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쓴 시 대부분이 참 행복을 노래했음을 뒤늦게야 발견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참행복의 비밀을 환히 밝혀 줍니다. 참 행복의 대가이자 달인이 바로 예수님이요 바오로 사도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종교는 아편일지 몰라도 살아 계신 하느님은 참 행복의 원천이 됩니다. 이런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기에,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서부터 역설적 참 행복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다음 결론같은 말씀입니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그날의 행복을 오늘 앞당겨 사는 것입니다. 살아 있음이 행복입니다. 기뻐하고 뛰노십시오. 하늘에서 참행복의 선물이 주어집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저주라기보다는 회개의 촉구처럼 들립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이런 이들은 현재의 삶에 자족하지 말고 즉시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이들과 함께 나누라는 회개의 촉구처럼 들립니다. 자발적 가난의 참 행복한 하느님 나라를 살라는 초대 말씀처럼 들립니다. 혼자의 행복이, 구원이 아니라 더불어의 행복이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은 복음을 통해 참 행복한지 우리에게 묻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하느님 중심의 종말론적 초연한, 참 행복한 삶의 모범입니다. 기혼이든 미혼이든 현세에 대한 집착의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둘 때 지금 여기서부터 누리는 초연과 이탈의 참 행복한 삶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이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행복하게 합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착으로 삶의 강물 속에 빠져 헤매지말고, 강물 위를 흐르듯 초연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건강해 보여도 아픈 곳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아파도 안 아픈 척, 약 먹으면서도 건강한 사람처럼 삽니다. 이런 “안 그런 척”, “-처럼”의 삶은 위선이 아니라 영적 성숙의 표지입니다. 이렇게 둥글게 익어갈수록 가을의 과일처럼 원숙(圓熟)한 삶이 됩니다.
“건강해 보입니다. 건강하십니까?” 안부 인사에 대한 저의 답변은 “살만합니다. 노력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진짜 참 건강은, 참 행복의 비결은 “희망과 기쁨, 감사의 명약(名藥)”을 잘 복용하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영혼이 건강하면 육신의 건강도 뒤따릅니다.
참 기쁨, 참 행복도 선택이요 훈련이요 습관입니다. 참 행복의 원천인 하느님과 늘 함께 할 때, 하느님 중심의 종말론적 초연한 참 행복한 하늘나라의 삶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참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 저의 힘이시여!”(시편18,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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