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6.12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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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6-12 08:56 조회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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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6.12.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신명 7,6-11 1요한 4,7-16 마태 11,25-30
예수 성심
“은총의 샘, 생명의 샘, 사랑의 샘, 구원의 샘”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시편103,1)
요즘 밤꽃 향기가 은은합니다. 이 또한 사랑의 향기, 하느님의 향기를 상징합니다. 오늘은 6월 예수성심성월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대축일>이고 내일은 <티 없이 거룩하신 성모성심 기념일>입니다. 모자분의 성심의 사랑을 배우는 우리들입니다. 마침내 하느님 사랑은 예수성심을 통해 환히 계시되었습니다. 아침 성무일도시 찬미가도 새로운 감동이었습니다.
“만민의 구세주신 예수님이여, 빛에서 태어나신 어버지의 빛
주님의 마음에서 넘쳐흐르는 고귀한 사랑의 힘 길이 남으리
만민이 마시리라 사랑의 은총 사랑의 샘터에서 한껏 마시리”
예수성심의 사랑을 마시고자 <사랑의 샘터> 미사잔치에 참석한 우리들입니다. 제 사랑 모두인 예수성심께 바친 30년 전 두 시詩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일편단심 예수성심을 사랑해온 날들이었음을 은혜로이 깨닫습니다.
“아련한 산 능선들
잔잔히 흐르는 강물
파란 하늘
새록새록 돋아나는 그리움에
파란 하늘 내 마음에
흰 구름 하얀 글씨로 당신 사랑 써봤습니다
예수성심”<1996.1.11.>
왜관수도형제들 피정지도시 썼던 <당신이름>에 이어 수도원 앵두열매를 보며 쓴 <고백>이란 헌시獻詩입니다.
“‘사랑합니다’
마침내 빨간 열매들로
예수성심께
사랑을 고백하는 앵두나무
초록빛 나뭇잎들 희망 사이로
수줍게 살며시 얼굴 내밀고 사랑을 고백하는
빨간 앵두 열매들
부끄러워 빨갛게 물 들었네”<1996.5.30.>
예수성심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잠시 살펴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후 창에 찔리셨을 때 피와 물이 나온 장면은 초기교회부터 중세 신비가들에 이르기까지 열렬한 묵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세례성사를 상징하는 물과 성체성사를 상징하는 물과 피는 그대로 예수성심의 사랑의 결정체가 된 것입니다.
교부들은 예수성심을 “모든 초자연적 은총의 샘”으로 생각했고, “천상보화의 창고에서 무수한 은혜가 쏟아져 나온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예수성심을 교회가 공인하고 적극적으로 보급하게 된 획기적 계기는 1673년 12월27일 예수님의 발현을 목격한 프랑스 방문회 수녀였던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Magaret Mary Alacoque1647-1690) 성녀였습니다.
“나는 성체성혈 대축일후 금요일을 내 성심을 공경하는 날로 정하기를 원한다. 그날 영성체하는 영혼들은 내 성심에서 사랑의 은총을 홍수처럼 풍부하게 얻을 것이다.”
바로 예수님의 이 말씀이 오늘 예수성심대축일의 근거가 된 것입니다. 이후 역대 교황들은 공식문서를 통해 예수성심 신심을 승인하고 널리 보급할 것을 권장했고, 마침내 예수성심의 교황이라 불리는 비오12세 교황은 1956년 회칙 <물을 길으리라>를 반포했으며 예수성심 공경의 교리 근거를 신학적으로 제시하며 강조했습니다.
“예수성심 신심은 하느님 사랑을 배우는 가장 효험 있는 학교로 인류를 구원의 샘으로 초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가장 적절한 응답이 된다.”
이어 예수성심 전교수도회 창립자 쥴 슈발리에(1824-1907) 신부 역시 “예수성심 신심 공경만이 이기심과 종교적 무관심에 대응할 수 있으며, 이 신심만이 세상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수단이다.”강조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 1995년부터 이 대축일을 <사제성화의 날>로 지냅니다.
모세의 말씀대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진실하신 하느님”은 오늘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안식처인 예수성심의 사랑에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온유와 겸손의 예수성심의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배워야 할 사랑공부임을 깨닫습니다. 인생은 <사랑의 학교>입니다. 온유와 겸손의 예수성심의 사랑을 배우는, 졸업이 없는 평생학인인 우리들입니다. 바로 이 아가페 사랑에 대해 사도 요한이 참 적절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분 안에 머무르십니다.”
예수성심의 사랑이 답입니다. 예수성심의 은총이 묵묵히 외로움을 견뎌내며 살게 하는 힘입니다. 오래전 <삶>이란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삶은
외로움을
견뎌내는 것
외로움중에도
묵묵히
사랑의 꽃들 피어내는 것
하늘이
별들 피어내듯
땅이 꽃들 피어내듯"<2001.8.17>
예수성심을 통해서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우리 삶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입니다. 레오14세 교황의 말씀대로 "예수님과의 우정(friendship with Jesus)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점차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두신 성소와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줍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103,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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