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신부] 26.06.02 연중 제9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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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6-06-02 08:55 조회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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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6.2.연중 제9주간 화요일
2베드3,12-15ㄱ.17-18 마르12,13-17
천상 분별력의 지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주여, 당신께서는 대대로
저희에게 안식처가 되셨나이다."(시편90,1)
요즘 단연 대세이자 흐름은 AI(인공지능)입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미 열린 판도라의 상자요, 때로 천사의 탈을 쓴 사탄처럼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이의 심각성을 통찰한 레오 교황의 <고귀한 인류>의 회칙입니다. 문제는 AI에 지배되지 않고 분별력의 지혜를 발휘하여 잘 지배하고 활용하는 것인데 쉽지 않습니다.
레오 교황의 “복음이 네 삶의 조종사(navigator)가 되도록 하라”는 말씀이 좋은 참고가 됩니다. 자동차 운전시 내비게이션처럼 삶의 운전에 복음을 내비게이션으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AI에 대한 답은 살아 계신 주님과의 깊은 친교뿐입니다. 더욱 기도하고 말씀을 공부하여 신비가요 영성가로 사는 것입니다. 오래 전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 자작시에서처럼 이런 고귀한 꿈의 사람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빛 영혼으로
사는 이
푸른 하늘 흰 구름 되어 님의 품안에
노니는 이
떠오르는 태양 황홀한 사랑 동녘 향해 마냥 걷다가
사라진 이
첫눈 내린 하얀 길 마냥 걷다 사라져
하얀 그리움이 된 이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1999.2.28.>
바로 이런 고귀한 인간의 빛나는 모범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했다 패퇴한 사탄의 유혹과 공격이 참 집요합니다. 죽어야 끝날 사탄의 유혹입니다. 어제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통해 논쟁에 밀린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오늘은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내어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예수님께 올무를 씌우려고 함정에 빠트리려는 시도입니다. 그대로 천사의 탈을 쓴 사탄입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아주 정확한 진단입니다만 예수님을 부추기는 교묘한 아첨이자 유혹입니다. 이어지는 물음이 그대로 진퇴양난의 함정입니다. 어느 쪽을 택하든 올가미에 걸립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바치라면 이스라엘 민중을 잃고, 바치지 말라면 황제의 반역자로 몰릴 수 있습니다. 이들의 속셈을 알아 챈 예수님의 역공이 기막힙니다. 그대로 천상 분별력의 지혜를, 지혜의 원천이신 하느님 아버지와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반영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가져온 데나리온 한 닢을 들고 이들과의 문답을 시작합니다.
“이 초상화가 누구의 것이냐?”
“황제의 것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군더더기 없는 간단명료한 명답입니다. 모두를 말했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정교분리의 원칙을 말한 것도 아닙니다. 데나리온에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듯이 하느님께서 창조한 고귀한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황제는 물론 모두가 하느님께 속한 하느님의 것이고, 바로 하느님을 잣대로 판단해야 할 <고귀한 인간>입니다.
이런 진리를 깨달았다면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저 같으면 세금을 낼 것이니 정치영역에서 어리석게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세금을 납부함으로 시민의 의무를 다함도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입니다. 이것은 결코 정교분리의 원칙과는 무관합니다.
황제도 나라도 세상도 모두가 하느님께 속한 것이니, 예수님처럼 늘 하느님의 시야로, 하느님의 공정과 정의, 사랑의 잣대로, 분별력의 지혜를 최대한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AI 활용에서는 그러합니다. AI는 기계요 사람은 하느님의 생명입니다. 어떻게 이런 천상적 분별력의 지혜를 지닐 수 있겠는지요?
바로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랑, 성령의 생명, 성령의 지혜, 성령의 분별입니다. 성령은 우리 모두입니다. 성령은 고귀한 인간의 희망입니다. AI에 대한 궁극의 답도 성령뿐이요 이 거룩한 미사뿐입니다. 이 미사를 통해 성령의 은총으로 날로 주님과의 우정을 깊이 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 사도가 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이 가르침대로 살 때 천상적 분별력의 지혜도 선사될 것입니다.
“우리는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는 만큼,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 무법한 자들의 오류에 휩쓸려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앎을 더욱 키워 나가십시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이제와 영원히 그분께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주님, 새벽부터 넘치도록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한생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편90,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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