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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신부] 21.06.04 연중 제9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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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1-06-04 09:14 조회1,3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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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4.연중 제9주간 금요일                                                              

토빗11,5-17 마르12,35-37

 

 

 

開眼의 은총

- 敬畏와 讚美의 삶 -

 

 

 

“주님은 눈먼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외로운 이를 보살피시네.”(시편146,8-9ㄱ)

 

마음에 와닿은 오늘 화답송 시편성구입니다. 어제 수도원과 거의 10여년 동안 여정을 함께 해 온 어느 부부와의 만남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버이의 날을 맞이하여 남편은 93세의 시아버지와 하루를 지내며 허심탄회한 부자간 대화를 나눴고, 자신은 90세의 친정아버지와 두 동생과 함께 하루를 지냈다는 일화였습니다. 자매와 친정 아버지가 나눈 대화중 한 대목입니다.

 

-“살아오시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습니까?”

“오늘이다!”-

 

화두처럼 마음에 와닿는,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날마다의 ‘오늘’ 행복하게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바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하루하루 ‘오늘’이 좋은 날, 행복한 날입니다. 참으로 복받은 부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두분 다 건강한 90세 이상의 아버지와 ‘어버이의 날’을 함께 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자매의 말을 듣고 화답했습니다.

 

“말 그대로 개안의 은총입니다. 성령의 은총이자 선물입니다. 성령께서 눈을 열어주셨기에 부부가 이런 아버지와의 행복한 만남과 대화도 가능했습니다.”

 

진짜 영적 삶은 개안의 여정이자 깨달음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안과 깨달음의 여정과 더불어 육신은 노쇠해가도 영혼은 날로 새로워지고 깊어질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깨달음이 바로 그러합니다. 성령의 은총으로 영의 눈이 열렸기에 이런 예수님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고백이지만 실은 해외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깨달음의 고백을 반영합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하신 주님이 되셨고 따라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다윗의 주님이 되셨다는 초대 교회 신자들의 고백입니다. 말 그대로 개안의 은총이요 성령의 은혜입니다. 성령의 은총으로 이들은 시편 110장1절을 렉시오 디비나 하여 예수님의 입에 담았던 것입니다. 다음 복음은 예수님의 말씀이자 동시에 초대교회 신자들의 고백이기도 하며, 오늘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시편110,1).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이 자손이 되느냐?”

 

참으로 성령의 은총으로 깊은 렉시오 디비나가 있었기에 이런 깨달음입니다. 참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메시아이자 파스카의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자 동시에 ‘다윗의 주님’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예수’와 ‘믿음의 그리스도’란 말마디도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일찍이 본토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아들로 섬겼으며 이에 더하여 해외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은총으로 눈이 열려 파스카의 예수님이 다윗의 주님이심을 깨달아 고백했던 것이니 바로 시편 110장1절, 다윗의 고백에서 그 근거를 찾았던 것입니다.

 

이런 개안의 은총은 순전히 성령의 선물입니다. 참으로 시종일관, 한결같이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하느님 경외와 찬미의 삶에 항구할 때 선사되는 개안과 깨달음의 은총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윗처럼,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처럼 파스카의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여 찬미가를 바칩니다. 어제 목요일 3시경 찬미가 1절입니다.

 

-“예수님 이 종들을 어여삐보사 저희의 간절한 청 들어 주시어

세상의 죄악들이 저희에게서 믿음을 앗아가지 말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 역시 다윗의 주님이자 우리의 주님이신 파스카의 예수님께 바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인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참으로 하느님 경외와 찬미의 삶과 함께 가는 성령에 의한 개안의 은총, 깨달음의 은총입니다. 오늘 제1독서 토빗서의 내용도 감동의 연속입니다. 하느님은 한평생 당신 경외와 찬미의 삶에 항구했던 토빗을 그 아들 토비야를 통해 눈을 열어 주시니 말그대로 개안의 기적, 개안의 은총입니다. 다음 개안의 극적인 장면이 신선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얘야, 네가 보이는 구나, 내 눈엔 빛인 네가!”

 

‘내 눈엔 빛인 네가!’ 얼마나 아름다운 말마디인지요! 정말 하느님께 우리들은 하나하나가 빛일 것입니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사람들은 어둠이 아니라 빛처럼 보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답게 주님의 눈에 빛같은 존재로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의 눈에 빛같은 존재로 변모시켜주십니다. 이어지는 토빗의 하느님 찬미의 고백도 감동적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의 위대하신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도 모두 찬미받으소서. 그분의 위대한 이름 언제나 우리 위에 머무르소서. 그분의 천사들 모두 찬미받으소서.”

 

토빗이 아들의 목을 껴안고 우는 모습이 루카복음에서 탕자의 귀가시 반겨 맞이하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만 여기서는 금의환향한, 하느님의 선물같은 토빗의 아들 토비야입니다. 평생 하느님 경외와 찬미에 충실했던 토빗에 대한 하느님의 상급이 토비야의 귀가에 이은 개안의 기적입니다. 마지막 자신의 며느리이자 토비야의 아내인 사라에 대한 축복도 감동적입니다. 

 

“얘야, 잘 왔다. 예야, 너를 우리에게 인도해주신 너의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길 빈다. 너의 아버지께서 복을 받으시고 내 아들 토비야도 복을 받고, 그리고 얘야, 너도 복을 받기를 빈다. 축복 속에 기뻐하며 네 집으로 들어가거라.”

 

새삼 우리 믿는 이들의 삶 역시 모두가 은총이요 섭리임을 깨닫습니다.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신 주님은 남은 평생도 잘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단 하나 우리에게 요구되는 조건은 한결같은 하느님 경외와 찬미의 삶입니다. 이런 한결같은 경외와 찬미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 개안의 은총이요 온갖 축복에 해피엔딩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 경외와 찬미의 삶에 충실하게 하시고 개안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토빗의 고백처럼 느껴지는 화답송 시편이 우리를 분발케 합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내 한평생, 나는 주님을 찬양하리라. 사는 동안, 나의 하느님 찬송하리라.”(시편146,1ㄴ-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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